"주인 아닌 대리인으로 거듭나야 IB 성공"

머니투데이 백경훈 기자 | 2008.09.24 12:39

증권연구원, "대리인 복귀와 리스크 관리 보강이 전제조건"주장

최근 미국 투자은행(IB)의 위기가 한국의 IB 육성 불가피론에 대한 공감대를 훼손하고 있으나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IB 육성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증권연구원 신보성 연구위원은 ‘자본시장 Weekly’ 최근호에서 “최근의 IB 위기는 비즈니스 모델을 잘못 세우고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결과”라며 이 같이 밝혔다.

신 연구위원은 “IB는 기업과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획득하는 대리인(agent) 역할이 본래 비즈니스 모델인데 지난 1990년대부터 고유자산 트레이딩(prop trading), 자기자본투자(PI) 등의 업무비중이 확대되면서 수수료 수익이 아닌 고유계정에서 이익을 창출하면서 자신의 이익 극대화에 몰입하는 주인(principal) 역할로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본래 대규모 차입을 통한 고유계정에서의 이익창출방식은 전형적인 상업은행 비즈니스모델인데 IB의 경우 예금 대신 시장차입에 크게 의존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들의 가치가 하락하자 급속한 자금회수가 이뤄졌고 그 결과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는 지적이다.

신 위원은 이어 ‘리스크 관리’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IB들의 공통점은 리스크 측정 및 관리의 주도권을 영업부문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신 위원은 “수익 창출이 목표인 영업부문이 리스크 측정과 관리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경우, 자신들이 부담하는 리스크의 크기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할 위험성이 크며 그 결과 실질적인 리스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와중에도 영업확대를 위한 차입이 계속 이뤄지게 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위험에 상응하는 비용을 제대로 부과하지 못한 것도 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됐다.

신 위원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자산과 관련해 큰 손실을 본 UBS의 경우, 유동성이 극히 낮은 부채담보부증권(CDO) 자산 보유에 따른 비용으로 1일물 콜금리를 사용했다.

위험 보유에 터무니없이 낮은 비용이 적용되다보니 위험추구행위가 더욱 조장됐다는 얘기다.


신 위원은 이런 과정에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한 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위기 발발 직전까지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편입된 CDO 자산의 대량보유가 가능했던 것은 신용평가기관들이 AAA 등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한 데 상당부분 기인했다는 것이다. 즉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만 믿고 안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반면 위기를 비켜간 금융기관들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 CDO 구조를 분해해 편입된 기초자산의 위험성을 자체적으로 일일이 파악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 그 결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기 전에 상당부분 CDO 포지션을 청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계량모형에 대한 맹신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이라고 신 위원은 진단했다.

신 위원에 따르면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VaR(value at risk) 모형을 통해 위험을 측정, 관리하는데, 이 모형의 특징은 장기간에 걸친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해 위험을 측정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과거 데이터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시기의 것들로 채워져 있어,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유용성이 극히 떨어지게 된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블랭크페인은 계량모형의 분석결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2006년 내부에서 제기된 CDO 자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포지션 감축과 헤징전략에 신속히 착수할 수 있었다.

반면 메릴린치의 전 CEO 스탠리오닐은 CDO 자산의 리스크를 경고한 임원들을 해고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함으로써 94년의 메릴린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신 위원은 “IB가 이상에서 논의된 오류에서 벗어나 ‘대리인’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고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투자은행 무용론’이야 말로 실제 무용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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