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부메랑 '웃는 은행 우는 은행'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 2008.09.23 08:09

우리·기업 보수적 판매로 '안도'… SC·씨티 등은 전전긍긍

최근 은행권 실적의 복병으로 부상한 통화옵션 상품 '키코'를 놓고 은행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 등은 과도한 위험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판매한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반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SC제일은행, 씨티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은 뒤늦게 돌아온 '부메랑'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22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키코 피해를 신고한 205개사의 거래은행은 한국씨티은행이 10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한은행(105건) 외환은행(92건) SC제일은행(70건) 등의 순이었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은 각각 13건, 17건에 그쳤다. 특히 중소기업 고객이 16만5000개에 달하는 기업은행의 취급액이 미미한 것이 눈에 띈다. 기업은행은 지난 6월말 기준으로 키코 취급액이 2억6000만달러로, 은행권 전체 취급액(75억달러)의 3.5%에 불과하다.

은행별 편차가 이처럼 큰 것은 키코 리스크에 대한 은행별 초기 판단이 달랐던 때문으로 보인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본점에서 키코 판매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환율 변동에 따라 리스크가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키코 거래를 원하는 일부 업체에만 소극적으로 판매했다"고 전했다.

기업은행은 이에 따라 최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태산엘시디의 주거래은행이었음에도 통화옵션 상품과 관련해 피해를 전혀 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또 최근 유동성 악화설에 시달리는 H사와도 통화옵션 거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H사는 기업은행 선정 '명예의 전당'에 등록될 정도로 인연이 깊은 곳이다.


우리은행 역시 보수적으로 판매했다. 우리은행은 본점을 통해서만 키코 거래를 하도록 했고, 주로 우량 대기업을 중심으로 거래했다. 또 키코 외에 스노볼, 키봇 등 투기성이 가미된 상품에 대해선 철저히 통제했다고 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원래부터 키코 판매는 위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봐서 판매를 독려하지 않았다"면서 "본점에서만 거래했기 때문에 영업점에 키코 판매 교육을 별도로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자 상당수 업체가 외국계 은행으로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SC제일은행, 씨티은행, 신한은행 등의 판매액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도 이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부 은행의 경우 10∼20명 규모의 키코 판매 전담반을 구성해 적극적인 영업에 나섰다"면서 "이 과정에서 보수적으로 판매한 은행들은 주거래고객을 뺏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키코 판매가 활발했던 기간엔 환율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피해액을 늘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은 높은 수수료를 챙기고, 중소기업들은 환테크를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어 양자간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다 원/달러 환율이 급반등하면서 해당 기업이 상당한 평가손에 직면했다. 은행권에는 뒤늦게 '부메랑'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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