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민유성을 위한 변명

머니투데이 박형기 통합뉴스룸 1부장 | 2008.09.22 08:57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시도했다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말렸기에 망정이지 민 총재의 의도대로 리먼을 인수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논리입니다. 특히 민 총재가 리먼의 스톡옵션을 갖고 있어서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는 비난마저 제기 되고 있습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나서서 '민유성 문책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민 총재가 문책돼야 한다면 저 또한 문책돼야 합니다. 저도 미국의 금융위기가 한국자본이 월가에 상륙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6년 12월 글로벌뷰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월가 사냥에 나설 기회라고 썼습니다. 당시 기자는 테마섹, 중국투자공사(CIC) 등 아시아 국부펀드가 잇따라 월가 금융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보고 우리만 월가의 파티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며 KIC도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습니다. 물론 필자가 칼럼을 썼다고 그랬지는 않았겠지만 KIC는 2007년 연초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이 단견이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시 아시아 국부펀드의 월가 투자은행 투자가 너무 성급하다고 논평했습니다. FT는 그 이유를 “아직 월가에 선혈이 낭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필자는 FT의 논평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FT는 영국의 언론이어서 그런지 월가를 월스트리트저널(WSJ)보다 더욱 객관적이고 정확히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아시아 국부펀드가 월가를 먹는 것을 영-미계 언론이 달가워 할리가 없다며 FT의 논평을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 FT의 선견지명에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FT가 말한 선혈이 낭자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수에 실패했지만 민유성 총재의 시도는 적절한 시도였고, 시점도 적정한 타임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록 미국의 투자은행(IB)이 망가졌지만 민유성 총재의 국제적 IB를 가져야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다는 지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이번 사태가 투자은행 모델의 한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투자은행의 주 업무는 채권 및 주식 발행, M&A 중개업무 등입니다. 이 업무는 누군가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투자은행 모델의 한계라기보다는 투자은행의 탐욕과 미 금융당국의 감독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극단적인 시장 지상주의로 규제를 대거 풀었습니다. 이에 따라 투자은행들은 이른바 최첨단 금융공학을 동원해 1차, 2차, 3차 파생상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부실화하자 최첨단 금융공학으로도 자산의 가치를 산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극단적 자유방임을 추구한 나머지 시장 만능주의가 발호했고, 이는 금융위기라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또 그린스펀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IT 버블 붕괴의 충격을 현란한 금리 마술로 완화했습니다. IT 붕괴를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으로 유도하기 위해 그는 사상 유래 없는 초저금리 정책을 폈습니다. 그 덕분에 IT 경착륙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더 큰 버블이 잉태됐습니다. 그 결과 그린스펀 스스로가 언급했듯 "100년 만에 한번 오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시도에 대한 찬반양론을 벌이고 있을 때, 국제적 자본들은 미국의 자산을 거저줍고 있습니다.

영국의 바클레이는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포기하자 기다렸다는 듯 리먼에 다가섰습니다. 미 정부와 줄다리기 끝에 일단 인수 불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리먼은 곧바로 쓰러졌고, 바클레이는 주저 없이 리먼의 알짜배기 자산인 북미 투자은행 사업 부문과 본사 빌딩, 데이터 센터 등을 샀습니다. 인수가는 2억500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중 남은 것은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뿐입니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중국의 CIC 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골드만삭스는 다른 금융사의 주가가 1~2달러까지 떨어지는데도 129.80달러(19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은 망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 월가의 파티가 거의 끝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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