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키코 손실' 부메랑 되나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반준환 기자 | 2008.09.21 11:56

피해 급증→중기 도산→은행 부실자산 급증 '현실화 우려'

중소기업들이 키코·스노우볼 등 통화옵션 투자에서 본 손실이 금융권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해당 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게되자 결국 은행들이 이를 떠안는 사례가 속출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카드 돌려막기'와 다름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태산엘시디의 사례가 단적이다. 태산엘시디삼성전자와 거래하는 등 손꼽히는 우량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키코 및 피봇 등 통화옵션 투자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그간 여러 자구계획을 마련했지만, 키코 때문에 올 상반기에만 667억여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통화옵션 손실이 자본금보다 많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태산엘시디와 통화옵션 거래를 했던 하나은행도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태산엘시디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함에 따라 회생 전까지 은행이 대신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탓이다.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없는 중소기업 부실채권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17일 환율을 기준으로 하나은행이 태산엘시디와의 파생거래 관련으로 2861억원의 평가손실을 봤고, 이 가운데 피봇 관련은 1388억원이라고 공시했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통화옵션상품 피해급증→중소기업 도산→은행부실자산 급증'이라는 연쇄고리가 현실화할 조짐이다. 최근까지 은행과 기업들은 외환시장이 안정되면 피해규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통화옵션 거래를 연장하거나 일시적인 자금지원을 통해 손실반영을 미뤄왔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한 때 1050원을 찍는 등 상황이 녹록지 않자, 더 이상 피해를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통화옵션상품 투자손실을 견디지 못해 도산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권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며 "현재는 은행과 중소기업이 통화옵션상품을 재가입하거나 대출을 받아 버티는 상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선 중소기업을 도산시킬 경우 장부상 손실이 현실화되기 때문에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실상 카드 돌려막기 상황이나 같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키코, 스노우볼 등 통화옵션과 관련한 피해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환율이 하향 안정되지 않는 경우 은행당 수천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은행별 피해 규모는 천차만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은행의 경우 본점을 통해서만 키코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 반면 다른 은행들은 지점장 전결로 계약을 체결토록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방이나 수도권의 중소기업들은 서울에 있는 은행 본점을 찾기 어려워 일반 영업점을 많이 방문했다"며 "관련 피해도 주로 영업점을 통한 것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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