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버리니 삶이 가볍고 기회도 커지더라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8.09.30 04:00

[머니위크 커버스토리]거꾸로 재테크/행복한 자발적 무주택자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오지의 한 오두막에 홀로 사시는 법정스님은 수필집 <무소유>에서 '소유는 얽매임'이라고 했다. 즉 물건에 욕심을 내면 소유의 좁은 골방에 갇힌다는 것이다.

욕망이 분출하는 현대 사회에서 무소유란 결코 만만한 덕목이 아니다. 특히 내 집에 대한 열망과 집착을 버리기는 더 더욱 힘들다. 우리 인생이란 어찌 보면 '집을 위한 투쟁'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내 집이 없어서 맘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확실히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무주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

“꼭 집을 살 필요가 있나요? 기회가 되면 사겠지만 죽도록 매달리고 싶지 않아요. 자녀들도 결혼해 분가해서 전세를 살고 있어요.”

기자가 장지완(가명) 씨와 처음 통화를 한 것은 지난해 말 그가 고위 공직에서 물러나고 난 뒤였다. 그는 ‘자고 일어나보니 1000만원씩 오른다’던 부동산 활황기에도 굳건히 전세를 고집했던 인물이다.

그의 자녀들도 출가를 해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모두 집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시대에 꼭 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퇴직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며 실명 거론을 피했다.

요즘 들어 부동산경기가 죽자 ‘무주택이 상팔자’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일명 ‘자발적 무주택자’다. 이들은 대출을 통해 주택구입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은 되지만 굳이 무리해서 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보다 뚜렷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다. 이들은 한국의 주택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보편적인 수입으로는 내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만약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더라도 매달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을 제하고 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내집 마련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월 100만~150만원의 이자와 원금비용이 고정비용으로 빠지게 되면 가뜩이나 오른 장바구니 물가와 아무리 줄여도 30만~40만원 이상인 자녀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에 힘에 부친다.

‘평생 빚 갚다 인생 종 친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과감하게 집 하나만 포기하면 부담 없고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집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구입능력이 부족해 주택구입을 포기하거나, 대출을 끼고 구입할 수 있지만 가격상승에 노심초사하기보다는 소비도 적당히 하면서 여유 있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현재 주택 가격을 절반가량 낮춰야 서민들이 내집 마련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국장 역시 주택문제로 머리를 싸매기 보다는 무주택의 즐거움을 택했다. “집값이 올라 얻은 소득은 불로소득 아닌가? 이는 정당하지 않다. 집 하나 바라보고 살기보다 삶을 누리면서 인간답게 살고싶다.” 무주택 예찬론을 펼치는 윤 국장의 말이다.

◆ 구입 시기 놓친 무주택자, 가점 높아도 고민

목동 상계동 등 부도심 개발이나 1기 신도시 개발의 막차를 놓친 수요자들 중에는 가파른 가격상승의 벽에 부딪혀 주택구입을 포기하고 비자발적 무주택자로 남은 경우가 많다.

금융회사 임원으로 재직 중인 40대 후반의 구본석(가명) 씨는 아파트 구입을 미루다가 아직도 무주택자로 남은 케이스다. 주변에서 강남이다 분당이다 하며 아파트 매입에 열을 올릴 때 한 템포 쉬는 전략을 취했다가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오르면서 구입하기를 포기했다.


그에게도 아파트 매입 기회는 있었다. 지난 2006년 한창 아파트 값이 뛸 때 지인이 내놓은 분당의 한 중형 아파트는 살고 있는 전세금에 약간을 돈을 빌리면 매입이 가능했다. 문제는 불편한 출퇴근과 채무 부담. 구씨는 장고를 거듭하다 매물을 놓쳐버렸다.

집에 대해 큰 욕심을 갖지 않던 그에게 요즘 부러운 시선이 꽂히고 있다. 매달 정기적금처럼 생각한 청약통장과 15년이나 되는 무주택기간 덕분에, 어떤 곳을 청약하든지 모두 당첨될 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시 마지막 황금알로 꼽히는 송파신도시나 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판교신도시의 예상 커트라인을 훨씬 상회하는 가점을 무기로 그동안 갈아타기로 재미를 본 친구들을 단숨에 넘볼 수 있게 됐다. 구씨의 가점은 무주택 기간 15년으로 32점 만점에 부양가족수 30점, 청약통장가입기간 16점으로 총 78점이다.

송파신도시 무혈입성은 그동안 구씨가 느껴온 박탈감을 한순간에 날리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결국 두 신도시의 3.3㎡당 분양가를 1000만원 이하로 낮출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구씨가 친구들의 시샘을 받는 포인트다.

당연히 송파신도시 청약이 수순이겠지만 부동산 버블이 더 꺼질 수 있다는 우려에다 집 없는 홀가분함을 감안해 여전히 청약을 망설이고 있다.

◆ 돈 있는 사람들 ‘난 무주택이 편하다’

수십억원의 자산가 중에도 전세나 월세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50대 초반 김찬호(가명) 씨의 보유자산은 300억원이 넘는다. 김 씨는 강남의 유명한 주상복합에 투자했다가 용산의 재개발지역으로 갈아타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다.

주상복합이 주거형태로는 매력이 없던 시절 이 물건을 헐값에 사들여 4배에 가까운 장사를 한 뒤, 곧 바로 용산 재개발부지에 투자해 다시 5배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부침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

부동산에서 재미를 본 김씨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은 무주택자다. 더 이상 주택에 투자해서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유동자산 중 일부를 전국 각지의 토지에 투자하고 대부분을 시중은행에 예치했다. 집은 월세 300만원짜리 고급빌라를 얻었다. 매달 나오는 이자로 월세를 내면서 생활비에도 모자람이 없다.

해외부동산 투자나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투자하는 방식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벌만큼 벌었다는 생각에 은행예치를 결정했다.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은 꾸준히 빠져나가지만 맘 편하게 고정수익을 얻을 수 있어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다.

최근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자산가들 가운데에는 주택을 일찌감치 처분하고 금, 토지, 달러(환치기)로 눈을 돌린 사례가 늘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구입해봐야 팔리지도 않고 종부세 부담도 커 주택구입을 꺼리고 있다”면서 “시장의 흐름을 읽은 자산가들 가운데는 집을 임차해 살면서 다른 투자처를 찾거나 관망하는 등 휴식기를 갖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주택시장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스스로 무주택을 선택한 이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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