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경시가 부른 'ELS의 애가(哀歌)'

김영호 재정전략연구원장 | 2008.09.25 09:49

[머니위크]청계광장

세계 금융시장이 난기류에 휩싸이면서 극심한 충격을 받고 있다. 마치 미친 듯이 몰아치는 풍랑과 싸우며 항해하는 난파선과 흡사하다. 그런 와중에 점점 배 안에 물이 차며 선체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빨리 폭풍이 걷히고 바다가 평온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것은 단지 소망에 불과할 뿐 한 개인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심지어 이번 폭풍의 발원지인 미국조차도 단시일 내 이 거대한 바람을 잠재울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말이다.

이런 악천후와 같은 금융환경 속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안쓰러운 투자자들이 있으니 바로 ELS(주가연계증권)와 관련 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물론 주식 직접 투자자들은 이미 상당수가 평가액이 반토막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펀드 투자자 역시 직접 투자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ELS 및 관련 상품 투자자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의 돈이 허공으로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이 상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원금이 안전한 줄 알고 투자했기 때문에 투자손실이 안겨주는 아픔은 주식과 펀드에 비해 몇 배 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원금 안전을 앞세우는 이 상품의 최근 원금손실률을 보면 ‘주식 직접 투자는 저리 가라’할 정도다.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투자자들이 원금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투자했기 때문에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의 가격 변동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원금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구조가 복잡해서 이해가 어렵다는 것도 원금 손실에 한 몫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 원인은 간단하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 금융불안의 뇌관인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가 그렇듯이 초심에서 벗어나 투자의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ELS는 당초 원금을 보장하면서 적정한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품을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적정 수익률이 얼마라고 규범에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증시 추이에 비추어 10% 내외가 아니겠나 생각된다. 그런데 2005년 이후 발행되어 판매된 ELS들의 평균적인 목표수익률은 대개 15%는 넘는 것이 많고 20%를 넘는 상품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상품 구조상 이런 높은 수익을 제공하기 위해선 그 대가로 당연히 원금 안전성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금비보장형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2003년 우리나라에 ELS가 처음 도입되던 무렵엔 당초 상품 개발 취지에 부합하는 원금보장형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점차 주식시장이 활황을 띄어 가면서 인기를 잃게 됐고, 그 빈자리를 원금비보장형이 메우면서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 변질되다 보니 올해와 같은 폭락장에서 재산을 갉아 먹는 원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따지는 것이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반성은 금융기관들의 몫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투자자보다 정보의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사태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다면 금융기관은 시장을 잃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다시금 ELS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 줘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내 피 같은 돈을 막연한 기대감과 판매하는 상담자의 말 몇 마디만 듣고 맡겨서야 되겠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품에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투자하려면 그 상품이나 자산에 대해 먼저 철저히 공부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어떤 상품이나 자산이건 돈을 굴리려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새겨둬야 할 진리는 “무지하고 귀 얇은 사람에게 행운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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