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엄격한 규제 감사합니다?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 2008.09.17 17:14
"요즘 금융감독당국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최근에 만난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말입니다. 금융회사 CEO가 감독당국을 칭찬하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열에 아홉은 '규제 때문에 장사 못해 먹겠다' 내지는 '시장은 모른 채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내는 게 보통입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잘나가는 미국 투자은행들도 쓰러지는 판에 국내 증권사들은 손실이 미미하다. 이유는 금융당국이 파생상품에 대해 아주 엄격히 규제해 왔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증권사의 자산에 따라 위험액을 산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자본을 보유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은행의 BIS비율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이 비율이 150% 미만으로 떨어지면 바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조치를 받게 되고 장외파생상품을 취급하려면 300%, 신탁업을 하려면 200%가 넘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NCR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며 항상 볼멘소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만약 이런 규제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몇 개 증권사는 문을 닫았을 거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금융당국의 규제가 뒤늦게 호응을 얻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사례는 최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대표적입니다. 집값의 일정 수준까지만 대출하게 하고 소득을 따져 대출금액을 결정하도록 한 규제인데요. 도입 당시에는 금융회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했었습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문제로 미국 금융회사가 줄줄이 문을 닫게 되자 국내 금융회사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최근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나섰던 산업은행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사실 산은은 리먼 인수를 강력하게 희망했지만 금융위가 강하게 제동을 걸면서 무산됐습니다. 리먼이 파산신청을 한 지금 산은도 금융위에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정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했다면 박수를 받아야겠지만 오비이락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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