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성 "리먼 살릴 수 있었다"

더벨 박준식 기자 | 2008.09.16 21:56

"구조조정 합의했지만 가격협상 불발..M&A 기회 다시 찾겠다"

이 기사는 09월16일(18:3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는 16일 "리먼브러더스 협상이 깨진 원인은 가격차 때문"이라며 "리먼 경영진이 산은의 제안을 받았다면 파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총재는 이어 "산은 대주주인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다른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며 "국내 금융산업이 아시아를 선도하고 산업은행이 리딩 뱅크가 되기 위해선 리먼 수준의 인포메이션 아비트러지 센터(IAC)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회견 전문

출입기자들과 차 한잔하자고 시간을 냈는데 규모가 예상보다 커져서 부담스럽다. 어쨌든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많다. 산업은행이 파산을 신청한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검토했기 때문에 그런 시각이 더 큰 것 같다.

리먼 인수를 검토하면서 언론에 충분한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비밀유지확약(CA) 때문에 협상 내용을 당시에는 일체 말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신뢰도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니 양해해 달라.

리먼이 처음 국내에 투자를 요청한 것은 7월 이전이다. 당시에는 산업은행이 아니라 국내 모 금융사에 리먼이 20% 지분의 투자를 제안했다. 당시 산업은행에는 이런 구조의 딜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할 것을 요청했기에 거절했다. 리먼은 그 돈을 다른 루트를 통해 조달한 것으로 안다.

이후 7월 중순경 리먼의 상황이 악화되자 산업은행에 경영권 지배 지분을 넘길 수 있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첫 협상의 거래구조는 공개매수(Tender offer) 형태로 결정됐다. 7월 말에 금융위원회에 대략적인 보고를 하고 예비 실사팀을 파견했다. 이후 8월초 제가 직접 뉴욕을 방문해 4~5일 동안 협상을 시작했다.

첫번째 협상은 리먼의 위험자산과 상각수준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너무 커 접합점을 찾지 못했다. 양측의 갭이 너무 커서 협상이 중단됐고 거래구조 역시 공개매수-구주주들에게 투자 자본이 돌아가는 것-라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협상을 중단하고 돌아왔다. 리먼도 구체적인 제안 없이 공개매수 성공과는 별개로 이사회의 승인을 받기 전 협상이라 쉽게 포기했다.

이후 8월 말 우리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2차 협상이 시작됐다. 거래구조는 신주인수로 자본을 투여하고 투입자본이 회사에 남는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당시 협상안은 3가지 조건을 토대로 이루어 졌다.

첫번째는 정부승인이 전제됐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주주라 총재와 정부의 이견이 최종의사결정에 있을 수 없게 돼 있다. 우리는 먼저 여러 협상 조건을 전제로 9월10일, 리먼의 3분기 실적 발표일에 맞춰 산업은행이 자본투자를 약속했다는 양해각서(MOU) 내용을 밝히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고 1차 협상때 자산상각 등의 의견차가 커서 부실자산을 구조조정하고 6개월간 시장상황을 지켜본다는 조건을 전제로 내걸었다. 구조조정에는 리먼을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나누는 방안이 포함됐다.

배드뱅크에는 산업은행이 용인할 수 없는 상업용 부동산 관련 채권과 주거용 주택 모기지 외에 이를 운용할 상당 수준의 자본을 떼어주기로 했다. 위험자산 회사를 분리해내는 작업이다. 굿뱅크에는 영업용 일반자산을 남기고 충분한 상각을 하기로 했다. 이후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준의 시간, 즉 2분기 가량을 지켜본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약속한 자본을 투자하는 시기는 도중에 급격한 변화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2009년 2월28일(1분기 말)이 예상됐다.

투자금은 내년 2분기에 리먼의 구조조정 성과와 당시 장부가치를 계산해서 내놓기로 했다. 이번 방법으로 양측이 부실을 측정하고 자산을 실사해서 추정액을 내기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 리먼 경영진과 합의했다.

우리에게 협상력이 있기 때문에 머티리얼 어드버스 체인지(MAC;Material Adverse Change), 즉 6개월간 파산에 가까운 사건이나 리먼의 신용등급에 중대한 변화가 없는 것을 투자 조건으로 할 수 있었다. 정리하면 첫째 구조조정을 전제로, 둘째 2월말 자산실사를 하고, 셋째 MAC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시장반응을 체크하면서 정부의 승인을 얻는 보수적인 안전장치가 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와 리먼이 생각하는 주당 투자가격이 문제였다. 우리는 리먼의 제안가격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가격을 제시했고 갭이 너무 컸기 때문에 협상이 중단됐다. 추가논의를 해보자는 식으로 M&A 펜딩상태에 들어갔다.

당시 9월 위기설이 고조되자 국책은행이 민영화와 M&A를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금융에 우려를 끼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주주이자 정책기관인 정부와 협의를 거쳐 협상중단을 9월10일 이전에 통보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리먼이 우리의 협상안과 가격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저는 리먼이 아마도 파산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은행이 제시한 투자안과 구조조정안은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보수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기에도 충분한 새로운 구조였다.

리먼이 안정된 구조조정을 거쳐 정상적인 영업궤도를 회복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와 협상을 중단한 후 경쟁적인 인수자들, 즉 BOA나 바클레이즈, 아시아계 금융사와 협상이 깨지면서 시장의 신뢰상실이 무섭게 돌아왔다. 리먼 주가가 폭락하고 카운터 파티 리스크가 생겼다. 스왑, 헤지 등의 영업에서 600조원의 자산을 가진 리먼이 거래회사로부터 외면을 당한 것이다.

거래사들은 리먼이 새 자본을 유치하지 못한 것을 두고 프리페이드 패널티를 물고서라도 대금을 회수하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예상한 이런 금액만 50조원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BOA나 미국 정부와 마지막 협상을 벌였고 미 정부가 추가 개입이 없다고 선언하자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국익 차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은행의 민영화나 투자은행으로의 도약에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진 정부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제가 리먼 딜을 추진했던 이유는 이런 검토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시도했던 것이다.


추석 연휴동안 리먼이 파산하고 메릴린치가 피인수되고 AIG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을 보고 금융위와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어려운 상황이 국제적으로 도약하려는 우리에게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산업은행의 수장으로서 리먼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염두에 뒀던 생각이다. 지금은 시장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원하는 딜을 할 수 있는 찬스가 있다.

이번 딜에서 정부가 상당히 직간접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다. 전광우 위원장과 갭이 있었다는 보도는 무리가 있다. 제 개인적으로는 리먼 인수가 당연히 아쉽다. 구조조정을 하고 인수했더라면 국익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9월 위기설 등과 맞물리면서 큰 안목을 가진 정부의 종합판단과 달랐을 뿐이다.

금융위와 대립각은 없었다. 7월에 실사팀을 보낼 때도 금융위에 대략적인 내용을 보고했다. 저 역시도 일단 검토를 위해 보냈던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보고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견이 있었다는 건 오해다.

금융위에선 국책은행이 주축이 되는 건 무리가 있고 민간은행과 컨소시엄을 이루는 것을 추천했다. 시중은행이 리먼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협상이 진행 중인 상태라 정확한 내용을 은행들에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시 전달 내용만으로 시중은행들이 의사표시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산업은행 행장으로서 민영화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국제 경쟁력이 있는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도 중요하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빠른 도구가 M&A다. 앞으로도 거래조건이 좋고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면 국익을 위해 검토하겠다.

투자은행에 종사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말하면 IB는 인포메이션 아비트라지 채널의 역할기능이 가장 크다. 세계의 가장 고급 정보가 가장 빠르게 집대성 되는 곳이 월스트리트다. 미국 4위의 은행인 리먼을 인수하면 우리가 소유할 때와 고객으로 자문료를 낼 때 받는 정보의 질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정보가치 하나가 5조에서 10조원일 수 있다. 우리가 국제화를 이루고 투자은행을 소유하면 언론의 지적처럼 산업은행이 경영하는 게 아니라 현지 경영진을 유지할 계획이다. 다만 MOU를 체결하고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경영진을 교체하면 되는 것이다.

리먼이 세계 주요 15개 도시, 뉴욕 런던 싱가포르 홍콩 등에 가진 채널을 산업은행이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IB의 채널을 상업은행과 공유해 국제화를 최단기간 내에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의 금융인이 그 네트워크에 같이가서 딜에 참여하는 게 최단 루트라고 생각했다.

이런 채널을 만들 수 있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앞으로도 딜을 검토하겠다. 물론 이는 정부와 의견교환을 한다는 전제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어차피 정부의 민영화 타임테이블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착실히 추진하는 게 총재의 소임이다. 리먼에는 이런 민영화를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민영화 전이라도 이런 구조를 만들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추진했던 것이다.

리먼이 주말에 챕터11(파산보호)을 신청했다. 주말에도 리먼 문제와 국제시장 파장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위와 일했다. 어제도 밤 새벽까지 같이 작업했다.

아쉬운 것은 협상 당시 만약 리먼의 경영진이 우리 제안을 욕심없이 받고 우리 정부가 이를 승인했다면 하는 것이다. 그랬다면 리먼은 절대 부도로 가지 않았다. 시장에서 추가 자본조달 가능성이 상실되자 카운터 파티들이 자기자금 보존을 위해 베어스턴스처럼 된 것이다.

만약 우리 제안을 받았다면 그런 상황에 가지 않고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언론에 2차 협상의 거래 지분이 25%를 6조에 산다고 나왔는데 지분은 25%보다는 훨씬 크고 가격은 그들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래서 협상이 깨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가격이 리먼으로서도 윈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한다. 지나간 얘기다.

앞으로 산업은행의 강점을 아시아 시장에서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5년 정도면 아시아에서 탑 3위권 내에 위치할 수 있다. PF든 PEF든 M&A나 DCM 파생 등에서 산업은행의 현재 시장경쟁력은 무섭고 그것을 시스템으로 잘 뭉치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시도와 더불어 M&A 기회가 올 것이고 이를 외면하면 오히려 행장으로서 배임에 해당한다.

M&A를 검토하는 것에서 충분히 들여다보면 배움이 있다. 그것에 따르는 위험부담이 하나도 없는 딜은 없다.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위험에 가장 나쁜 시나리오라도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면 검토할 수 있다.

우리에겐 중요한 인포메이션 아비트라지 센터가 경제규모에서 반드시 필요한 숙제다. 미국에 여러개가 있지만 우리에겐 한 개도 없기 때문에 멘데이트나 자문료를 내고 쓰는 식만은 상당한 불이익이다. 그런 기능을 산업은행이 민영화 아젠다에 발맞춰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달성하겠다.

리먼의 스톡옵션 얘기는 개인적으로 섭섭했다. 리먼에서 3년 근무하면서 당연히 스톱옵션을 받았지만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시도를 첫번째 이사회에 보고할 때 서면으로 이해관계 상충 관계가 있다고 문서로 알렸다. 이 딜이 체결되면 그 즉시 스톱옵션 포기를 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사회 내용은 녹취도 됐다.

딜이 성사됐는데도 옵션을 숨겨서 가지고 있었다면 산업은행이 공공기관이고 제가 공직자인데 그런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섭섭하더라도 국익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쪽을 금전적인 보상보다 더 큰 명예로 보상받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언급을 자제한 것은 시장에서 곡해할까봐 고언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전망에는 개인적으로 우려가 있다. 미국 5대 은행 중 3개가 몰락한 것은 시장이 워스트 케이스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6개월 정도 선행한다고 보면 어떤 시각에서는 지금이 바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저는 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염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리먼의 채권 등이 여러 금융기관의 재무구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러면 리먼 뿐만이 아니라 시장의 생각이 경직된다. 추가적인 자산가치의 하락이 또 올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 부분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시장은 당분간 어려워질 수 있다. 전염효과 부분을 어떻게 하느냐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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