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인수 협상 시작서 불발까지 '막전막후'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 2008.09.16 19:40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16일 "리먼이 8월말 우리가 제시한 협상안에 합의했다면 부도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민 행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산은이 제시한 협상안은 굉장히 보수적인 안이었다"며 "리먼 경영진이 가격에서 욕심을 좀 버리고 추가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행장 얘기를 토대로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의 막전막후를 재구성해봤다.

◇"컨트롤 지분 넘길 수 있다"= 지난 6월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부실로 충격을 받고 있던 리먼은 한국 금융기관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민 행장은 "리먼이 국내 다른 금융기관과 20% 정도의 투자 얘기를 했었다"고 말했다.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할 입장이 아니었던 산은은 불참 통보를 했고, 리먼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7월 중순쯤 리먼은 산은에 직접 손을 내밀었다. 민 행장 취임 후 한달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산은 행장 취임 직전 리먼의 한국대표를 지냈다. 리먼이 제안한 내용은 "컨트롤 지분을 넘길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분 51%를 인수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해 온 것. '탠더 오퍼 딜(시장에서 구주주들에게 지분을 직접 사는 것)'로 산은은 리먼과 조심스럽게 협상을 진행했다.

7월말쯤 산은은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팀을 뉴욕에 급파했다. 합병·인수(M&A)의 기본 절차인 실사에 들어간 것이다. 8월초 민 행장도 뉴욕으로 건너가 실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시간이 촉박했던 만큼 완전한 실사는 아니었다. 필요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파고 들었다. 결과는 협상 중단으로 이어졌다. 위험성이 높은 자산에 대한 상각과 관련해 양측이 상당한 이견을 드러낸 탓이다.

민 행장은 "위험성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당시 상태로는 탠더오퍼를 할 수 없어 일단 협상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가격만 빼고 모두 합의=8월 중순 중단됐던 협상이 재개됐다. 하지만 방식이 달라졌다. '탠더 오퍼'가 아니라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산은은 리먼에 부실위험자산을 배드뱅크로 보내고 배드뱅크는 굿뱅크와 완전히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굿뱅크에 남아 있는 일반 자산도 추가상각을 요구했다. 구주주의 지분을 인수하면 국부가 유출되지만, 신주 인수시 투자금이 리먼에 남게되는 구조였다.

민 행장은 "굿뱅크를 시장에서 확실하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자산과 자본을 가진 곳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상각 규모에 대해 "상당한 수준"이라고만 언급했다. 금융계는 3분의 2 가량을 상각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했다.

리먼은 이같은 산은의 구조조정안에 합의했다. 양측은 나아가 9월 10일 인수 선언을 하고 6개월 후인 내년 2월 28일 현재 장부가격을 토대로 최종 인수가격을 산정키로 구체적인 기간까지 이끌어냈다. 구조조정의 완결은 물론 충분한 자산실사를 위해 6개월의 시간까지 벌었던 산은은 또 하나의 안정장치를 마련했다. 이 기간 동안 파산에 가까워지거나 신용등급 하락 등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집어넣었다.


민 행장은 "위험요소를 충분히 제거하고, 리먼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시장의 반응을 관찰하고 투자에 들어가는 거래구조를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산은은 8월말 정부 승인을 전제로 이같은 협상안을 리먼에 제시했다.

◇"경영진이 욕심 버렸으면…"=산은이 던진 협상안을 검토한 리먼은 9월초 수용 불가 입장을 전해왔다. 구조조정안과 기간에 모두 합의했지만, 가격추정에 큰 이견이 발생했다. 민 행장은 리먼과의 비밀유지협약을 이유 삼아 구체적인 협상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단 실제 인수규모는 외신에서 보도된 지분 25%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다. 가격 역시 리먼이 제시했던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민 행장은 특히 "우리의 제안이 굉장히 보수적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그 때 가격이 그래도 리먼과 산은이 윈-윈 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나 싶다"며 "리먼 경영진이 가격에서만 욕심을 좀 버리고 추가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뒤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면 부도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특히 "시장에서는 우리와 협상이 깨지면서 리먼의 추가 자본 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했다"며 "이로 인해 리먼이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거래 상대방들이 일제히 자금 회수에 나서는 바람에 50조원의 유동성 부족 상황에 처해 경영진이 결국 두 손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추가적인 지원이 없다고 못을 박은 상태에서 마지막 인수협상이 실패로 돌아가 자본이 들어올 가능성이 차단되자 파산보호 절차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민 행장은 "리먼은 8월말 협상안에 대해 검토했지만 거래조건에 상당한 이견이 있어 받아들이기 어렵고, 추가적인 논의를 뉴욕에서 해보자는 얘기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산은은 추가 협상에서 베어스턴스의 사례를 들어 리먼의 부실이 더욱 커질 경우 미국 정부의 보증을 요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정부 반응도 '시큰둥'=양측이 가격차이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9월로 접어들었다. '금융위기설'이 본격적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정부는 리먼 인수보다 지주사 전환을 통한 산은의 민영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당초 원론적인 수준의 정부의 신중론은 점차 '인수 불가'로 기울었다.

민 행장은 "민영화를 위한 해외 M&A를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주이자 정책기관인 정부는 그런 검토가 혹여 금융시장에 우려를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산은도 국책은행으로서 그런 부담을 국내 금융시장에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초 산은은 9월초 리먼과의 협상을 중단한 상태였다. 뉴욕에서 추가 협상을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만,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사실상 협상을 종결키로 했다. 이를 추석연휴가 지난 뒤 곧바로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시장에서 계속적으로 억측이 만들어지자 지난 10일 앞당겨 공식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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