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두병 두산 초대회장 부인 명계춘여사 별세

머니투데이 김창익 기자 | 2008.09.16 08:41

조용한 내조.."두산家 산증인·정신적 지주 역할"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가 9월 16일 오전 4시 40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13년 서울 출신으로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지난 1931년 고 박두병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은 명 여사는 6남 1녀를 기르며 어머니로서 일생을 살아왔다.

명 여사는 강한 정신력과 포용력을 갖춘 현모양처의 표본이었으며,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가족과 직원들을 뒷바라지 해온 두산가의 산증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박두병 회장이 인화와 신용의 기업가 정신으로 1967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970년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상공업계의 거목으로 한국의 산업합리화운동을 주도한 20세기의 대표적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재벌가의 안주인답지 않게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명 여사의 조용한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두산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명 여사의 부친은 서울 서린동 97번지에서 저포전(모시가게)을 경영했다. 명 여사가 숙명여고에 재학했던 시절 집안에서 박두병 회장과 혼담이 오갔는데, 박 회장은 당시 숙명여고 정구선수로 활동했던 명 여사가 동아일보 주최 전국여자연식 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도 모르게 경성운동장에 가서 선수로 출전한 명 씨를 보고 생애의 반려자로 맞을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1931년 5월 숙명여고를 졸업한 지 두 달 만에 명 씨는 공회당(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당시 경성고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두병 회장과 결혼했으며, 구습의 예의범절과 신교육이 조화를 이뤄 두산 창업주 박승직 부부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혼 이듬해인 1932년, 명 씨는 맏아들 용곤을 낳았다.

명 여사는 어릴 적 명절 때 쓰던 달걀 껍데기에 남아있는 흰자위를 모을 정도로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한다. 명 여사의 시집생활은 평소 그가 체득한 근검절약과 인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해방 후 명 여사는 박 회장의 뜻에 따라 운수업의 실무를 맡았다. 초기에 운수업은 가업 수준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으나 이것이 훗날 무역업체 ‘두산상회’ 발족의 토대가 됐고, 6ㆍ25 전쟁 중 피란지 부산에서 대규모 운수업인 ‘제3모터풀’을 운영하는 데 좋은 경험적 기반이 되었다.

1920년대 박승직 창립자의 부인 정정숙 여사가 '박가분 제조본포'를 손수 경영하였듯이, 박두병 회장은 그의 부인 명 씨로 하여금 운수업을 직접 운영해 나가도록 한 것인데, 창업 1세 부인 정 씨의 '내조 기업 경영'의 전통이 며느리에게 고스란히 전수된 것이다.

명 여사는 박 회장 못지 않은 절약 습성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고 한다. 취사용 가스가 아깝다고 난로에 연탄불을 피워, 곰국ㆍ보리차 등을 끓이며 노는 불에는 팥을 삶고 맹물이라도 올려 놓았을 정도다.

명 여사는 박두병 회장이 동양맥주를 창립하고 대한상의 회장을 지내는 등 국가경제 발전에 주력하는 동안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내조와 자식교육에 전념해 현모양처의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1973년 박 회장이 타계한 뒤부터는 집안의 어른으로서 근검과 겸손의 정신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전수해 왔다.

그 동안 명 여사는 매년 1월 자신의 생일에 조촐한 축하연을 갖고 또 수시로 가족모임을 통해 인화의 정신을 몸소 보이는 등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으며, 두산이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창업정신을 지키며 꾸준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데 뿌리가 되어 왔다는 게 두산측 설명이다.

명 여사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19일 오전 8시30분 발인이다. (02)2072-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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