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쓰나미' 앞에 메릴도 별수 없었다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8.09.15 11:39

[BoA-메릴 전격 합병 배경]'다음은 메릴' 공포… 당국 중재

시가총액기준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세계 최고 증권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메릴 린치를 전격 인수했다.

지난 주말 이후 리먼브러더스의 잠재적 인수자로 급부상한 BoA는 14일(현지시간)리먼과의 인수협상이 불발된지 불과 몇시간도 안돼 리먼보다 더 덩치가 큰 메릴린치 인수를 전격 발표했다.

94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릴린치 이사회 멤버중 합병에 반대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상황은 긴박했다.


메릴 린치가 전격적으로 BoA와의 합병을 결정한 것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임박했던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산업은행 등 그동안 회자되던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유치에 실패한뒤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지던 BoA, 바클레이즈들조차도 등을 돌리면서 리먼 브러더스는 이날 자정을 기해 파산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의 협상 결렬 발표 당일 주가가 반토막난 것을 비롯, 지난 한주동안만 리먼 주가가 80%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메릴린치로서는 리먼이 파산할 경우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주초 패니 매와 프레디 맥에 대한 국유화 조치 이후에도 신용경색이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유동성 압박이 심해져 온데다, 유동성 압박보다 더 무서운 '신뢰상실'로 인해 메릴 주가 역시 급락세를 걸어왔다.

NAB리서치의 애널리스트 낸시 부시는 "존 테인 메릴린치 CEO가 그나마 최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순간에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메릴린치의 고위 임원도 WSJ과의 통화에서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불가항력임을 고백했다.

◇ BoA, 신용경색은 최대 기회

수개월, 수년이 걸릴수도 있는 금융사상 최대 인수합병을 48시간만에 해치운 BoA는 메릴린치를 인수함으로써 세계 금융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하게 됐다.

단연 세계 최고로 꼽히는 증권 브로커리지 부문과, 주식 리서치 부문은 물론, 신용카드에서 M&A 컨설팅에 이르는 전 금융부문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수 있게 됐다. 특히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인도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강한 메릴린치의 네트워크를 손에 넣게 됐다.

케네스 루이스 BoA 회장은 글로벌 신용경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왔다. 올해초만 해도 모기지 발 신용경색 회오리 속에서 모기지 파문의 '주범'으로 꼽힌 컨트리 와이드를 인수, 금융권을 놀라게 했다.

지난주말 종가 17.05달러에 비해 70% 프리미엄이 붙은 주당 29달러, 총 440억달러의 가격은 얼핏 보기에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어보인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여파로 월요일 개장과 동시에 메릴린치 등 시장불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융주 주가 추가폭락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릴린치의 '명성'을 사고자 했던 루이스 회장으로서는 돈을 더 주고서라도 더 이상 시장신뢰에 금이 가기전에 메릴을 인수하는게 '남는 장사'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당 29달러는 1년 전 주가에 비하면 3분의2에 불과한 가격이다.

◇헨리 폴슨 "개입 안했다"불구..정부 '중매' 결정적 역할 한듯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CNBC와의 통화에서 민간부문의 인수합병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BoA와 메릴린치의 전광석화같은 결합에는 시장 붕괴를 우려한 미 당국의 압력과 중재가 작용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주말부터 리먼 처리를 위한 일련의 협상에는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은행 총재, 크리스토퍼 콕스 미 증권거래위원장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해 왔다.

'베어스턴스'방식처럼 미 정부의 지원을 원했던 원매자들이 리먼으로부터 등을 돌림에 따라 리먼의 파산이 임박하자 미 정부 당국은 곧바로 메릴린치 압박 강도를 높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리먼은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리먼보다 덩치가 큰 메릴린치마저 주가폭락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로 문을 닫는다면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마저도 대 혼란에 빠져들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모건 스탠리 역시 최종 순간에 메릴린치 인수자로 검토됐으나 모건스탠리 역시 모기지 부실이 만만치 않아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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