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채 발행, '연기'냐 '실패'냐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8.09.12 08:38

"현격한 의견차이", 북빌딩 단계서 '연기'결정

한국 경제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기획'됐던 외국환 평형기금 채권 발행이 불발로 끝났다. 외평채 발행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평채 발행을 위해 미국 뉴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과 협상을 벌여온 기획재정부 대표단은 11일(현지시간) 조건이 맞지 않아 발행을 연기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금리(가격)와 투자자들이 제시한 금리 차이가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의미 없다", 'book' 덮어...'실패'아닌 '연기'

대부분의 국제 금융 입찰과 마찬가지로 외평채 프라이싱은 '북 빌딩(Book Building)'방식으로 결정된다. 주간사 회사들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희망 가격(금리)을 일정 범위로 제시하고 '프라이싱 데이'에 기관들이 가격과 인수희망 금액을 적어내는 것이다.
주간사는 이를 집계(Book Building)해 가중평균한뒤 가격을 결정하고 인수물량을 배정한다.

협상단은 11일 기관투자자들로부터 가격과 금액을 받았지만 결국 이를 집계하기 이전 단계에서 발행연기를 결론지었다.
'북빌딩'을 끝내고 물량배정이 이뤄진 단계에서 인수 희망 금액이 발행물량에 미달될 경우는 발행이 '실패'한 것으로 보는게 국제 금융권의 관례라는게 협상단의 설명이다.

정부가 목표로한 가산금리와 투자자들의 제시한 금리가 차이가 나 이번 외평채 발행이 의미가 없었다고 판단, 중도에 발행연기를 결정했다는게 협상단의 입장이다.
이미 국내외에서 '한국경제 위기설'이 근거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고 있는 만큼 굳이 가산금리를 높여 세금과 민간부문 자금 부담을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연기'이건 '실패'이건 당초 정부가 의도했던 대로 '성공적인 발행'을 통해 한국경제의 견조함을 대내외에 과시하겠다는 목표와는 거리가 먼 모양새를 남기게 됐다.


◇ '리먼'이 결정타..'북한변수'도 가세

외평채 발행 대표단을 이끈 신제윤 차관보는 한국경제의 9월 위기설이 확산되자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 평형기금 채권(외평채) 발행을 통해 한국경제의 견실함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협상단으로서는 발행이 실패할 경우 오히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악화되는 등 시장에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부담이 컸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외평채 발행 무산이 '실패'가 아닌 '연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지 채권시장 관계자들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리해서 채권을 발행하기보다는 연기한 것이 현명했다는 분위기이다.

8일부터 이뤄진 로드쇼(설명회)를 거쳐 11일 이뤄진 최종 프라이싱(금리결정)이 당초 예정됐던 오후 1시30분을 넘겨 4시까지 늦춰진 것은 마지막까지 시장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려 딜을 성사시켜 보려던 협상단의 의지때문이었다.
협상관계자들은 시장상황만 안정되면 하루 정도 연장해서라도 발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고 전했다.

당초 휴일인 7일 발표된 미 양대 모기지 업체에 대한 사실상의 '국유화' 조치로 8일 금융시장이 급속히 안정되면서 외평채 발행에도 '순풍'이 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하지만 주택시장 안정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곧이어 미국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떠오른 리먼 브러더스 주가가 이날도 40%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잦아들지 않았다.
리먼 뿐 아니라 세계 금융권 전체가 신용경색 및 자산부실화로 인한 유동성 악화와 주가 급락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잔뜩 움츠러들수 밖에 없어 '호가'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는게 협상단의 설명이다.

영향이 크진 않았지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이상설도 부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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