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달인, 대학경영을 말하다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 2008.09.17 09:22

[머투초대석]오영교 동국대 총장 "손발 묶였어도 갈 길은 간다"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오영교 총장은 설계사무소 같은 총장실에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기자 일행을 확인하고는 금방 얼굴을 폈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이 '혁신전도사'로 불리는 노회한 경영가의 마음을 찌푸리게 만들었을까. 의문은 인터뷰가 얼마 진행되지 않아 풀렸다. 오 총장은 인터뷰 내내 '답답함'을 많이 호소했다. 손발이 묶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하소연.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율' 바람이 불고 있지만 얼어붙은 교육 현장을 녹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 보였다. 그 자신 30년 넘는 공직생활로 행자부 장관까지 오른 정통관료지만 정부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비판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다만 여러 어려움과 한계 속에서도 오 총장은 혁신에 대한 의지만큼은 더욱 갈고 닦고 있었다. 성과평가, 강의평가, 상시정원관리 제도 등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를 자신했다. 대학경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취임한 지 1년6개월 정도 지났는데, 관(官)에 계실 때와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젊은이들 속에서 자유, 창의 같은 걸 느껴서 좋다.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대학은 상대적으로 매우 낙후돼 있다. 할 일이 많아서 재미있다.

-대학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정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혁신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정부는 국민이 고객이고 각 분야에서 국민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교육부는 가장 권위주의적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 사로잡힌 부처다. 학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전부 교육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 교수 한 명 채용하는 것도 교육부에 보고해야 자격이 발생한다. 영어교육과를 하나 만들려고 해도 인가를 안 해줘서 못 만들고 있다. 학교가 스스로 돈을 벌어 학생들의 등록금을 경감해 주고 싶은데 기업을 세울 수가 없다. 정부가 지원도 제대로 안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다 막아놓았다.

사학법을 자세히 한 번 뜯어봐라. 인사, 예산, 사업 등 총장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권한은 이사장에게 있다. 우리 학교는 이사장이 전권을 저에게 위임했지만 그런 대학은 서울 시내 고대, 연대, 이대, 숙대 등 4곳 정도밖에 없다. 대학을 스스로 경영하려면 인사권, 예산권, 사업결정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핫바지 총장을 만들어 놓고 무슨 일이 생기면 총장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건 웃기는 거다. 법 체계가 엉망인 상황에서 교육부가 모든 걸 '예스, 노' 하고 있는 상황이다.

-로스쿨 탈락으로도 할 말이 많으실 것 같다.
▶권위적인 공급자 위주 행정 형태의 대표적인 사례가 로스쿨이다. 대학들이 로스쿨에 투자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고 기준을 계속 바꾸면서 심사는 엉망으로 했다. 14등을 했는데 15등과 19등은 넣어주고 동국대는 뺐다. 이건 사기다. 도둑맞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다. 전 정부가 막바지에 잘못했으면 새 정부에서 바로잡아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 모든 책임은 현 정부가 져야 한다.

-로스쿨 문제를 포함해서 학교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고 계신지.
▶현안인 법대 문제의 경우 교수님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어차피 로스쿨 제도는 개편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형적인 형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현 체제대로 갈 수가 없다. 그걸 대비해 완벽한 로스쿨로 가기 위한 준비는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동시에 교과과정 개편, 동국법률구조지원단 구성 등 법대로서의 능력도 확충해 가려고 한다.

그리고 동국대가 가장 강점을 가진 것 중 하나가 문화예술 분야다. 이미 학교 밖에서 잘 구축된 맨파워와 결합시켜 독자적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키워나갈 것이다. 또 BT, IT 쪽으로도 특성화하고 있다. 7만5000평 부지의 일산 의대를 의료복합단지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의학과 바이오가 결합된 바이오 캠퍼스로 만들어 인력양성과 의생명산업을 동시에 담당할 것이다.


또 하나 동국대가 강점을 가진 분야가 경찰행정 쪽이다. 특징을 살려 수사나 범죄연구 등 세분화해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불교의 경우 세계적인 불교학으로 발전시켜 나가려고 한다. 불교에 대한 연구 능력이 있는 곳이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불교를 연구하려면 한국 동국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 할 정도로 불교학의 중심지로 만들 계획이다.

-의학, 바이오 부분은 경주 시민들과 마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방 의대생들이 3,4학년이 되면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연구기능, 인력훈련 기능은 사실상 일산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경주에서는 의과대학을 옮기는 걸로 이해해서 반발이 있었는데 법상으로 수도권정비법 때문에 못 옮긴다. 의과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경주 의과대와 일산병원의 기능들을 통합시켜 주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이다.

-교수들에 대한 연봉제, 성과급제도 도입하셨는데 힘들지 않았나.
▶당연히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저항도 있었지만 지금은 강의평가부터 성과평가 등에 대해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불만이 있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성과평가, 강의평가, 상시정원관리 제도 등에 있어 동국대만큼 잘돼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점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민간기업보다 훨씬 발전적으로 돼 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동국대는 대학경영만큼은 다른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우수인재를 많이 데리고 와야 할 텐데 정부 규제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대학이 자기 특성에 맞게 뽑는 거다. 그런데 정부가 자꾸 자율을 없애고 규제를 만들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학간 서열은 공개적으로 나타나고 학생들은 대학의 특성이나 적성보다 대학 서열 위주로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이건 잘못된 거다. 대학이 백화점식으로 운영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 자율을 주는 게 제일 좋다.

-동국대는 학과 구조조정이 잘 되고 있나.
▶우리는 이미 상시정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입시경쟁률과 성적, 재학률과 취업률 등 5개 지표로 모든 학과를 평가한다. 평가 후 하위 15% 정도는 정원을 줄여 재배분한다. 2~3년 정원이 줄어들다 보면 학과 운영이 잘 안된다. 학과를 없애려는 목적보다는 학과가 존립하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단과대학과 학과가 판단해 달라는 주문이다. 학과명칭이 잘못됐으면 사회변화에 맞게 바꿔본다든가, 교육내용을 바꾼다든가 고민을 해 달라는 얘기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 독어독문과로는 내후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는다. 몇 개 과는 학부로 통합됐다. 이런 변화가 가능해져야 학교 특성에 따른 발전도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게 정착이 되면 학교 등급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학교 특성에 따른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CEO형 총장을 영입하는 게 대학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총장은 학교를 경영하는 게 주 임무다. 대학의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대학이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은 경영을 해 줘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도 기업보다 더 합리적이어야 하고 일도 효율적으로 빨리 진행돼야 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만족하는 고객만족 시스템이 도입되도록 경영이 돼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학교를 경영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낙후돼 있다.

의학은 의사가 가장 전문이니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도 의사가 해야 하나. 그런 건 아니다. 조직의 수장은 비전을 만들고 전체 구성원에 미션과 동기를 부여해 에너지의 합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CEO의 역할이다. 전문적 판단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판단에 근거해 일을 선택하고 목표를 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경영이다. 총장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대담=방형국 전국사회부장, 정리=최중혁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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