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경쟁력이 높은 사회를 꿈꾸며

이건희 외부필자 | 2008.09.10 13:13

이건희의 행복투자

사업실패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안재환씨의 사망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서에는 아내인 정선희씨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유명인의 죽음으로서 언론이 크게 보도하고 그를 사랑했던 많은 대중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유명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친한 사람으로부터 지난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서울 외곽의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파트 방송을 통해 경비실에서 전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무슨 전달사항인가 귀 기울여 들어보았더니. OOO동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는 사람의 가족을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사람은 청소년이었는데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떨어져서 죽은 것이라서 시신의 보호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학업에 관하여 평소 부모와 트러블이 많았으며 그날도 트러블이 있었는데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 아파트에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아주 못하는 아이는 아니라고 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조차도 부모와 공부 관련한 트러블이 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 잘하면 잘 하는 대로 특정 대학이나 특정 학과에 꼭 아이가 가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파트 단지의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매일 평균 3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평범한 사람의 흔한 죽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에 의하면 작년 2007년에 자살사망자 수가 1만2174명으로서 2006년보다 11.6%나 증가하였습니다.

매일 무려 30 여명이 자살을 하니 일반 개개인의 죽음은 관심을 끌 사건도 아니라서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평소 거의 없다면 신문에 보도될 것입니다. 자살 사건이 이례적인 일이니까요.

아이를 껴안고 달려오는 전철에 뛰어드는 경우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이 흔치 않은 경우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언론이 보도합니다. 제가 직접 아는 사람 중에도 안재환씨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연탄불을 켜놓고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지만 그런 평범한 방법을 평범한 사람이 사용한 경우는 보도되지 않는 것입니다. 타살, 즉 살인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인사건은 언론에 보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한 죽음은 보도되지 않고 흔치 않은 죽음은 보도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때 워낙 많은 사람이 죽어가니까 한 사람 한사람의 죽음을 일일이 언론이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흔한 유형의 죽음이라고 해서 별것 아니고 흔치 않은 유형의 죽음이라고 해서 대단한 죽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임의로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어떤 경우에건 전부다 가슴 아픈 것입니다.

해마다 1만2000여 명이 죽어가는 것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평소에 이에 대해 무관심한 편입니다. 유명인의 자살이 보도되었을 때에만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곤 합니다.

성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겠다면 실패에 대해서도 알아야하고 큰 수익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겠다면 쪽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겠다면 자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왜냐면 행복은 불행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것이며 행복의 반대편인 불행의 종착역이 바로 자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불행한 마음을 가져오는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이 세월이 흐르다보면 언젠가 조금은 더 나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롭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불행한 마음이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습니다.

멀쩡하던 아이가 장님이 된 후 방안에 틀어박혀서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지내다가 3년 만에 훌훌 털고 일어서서 그 뒤 열심히 공부해서 크게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장님이라는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행을 느끼게 만든 상황은 변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언젠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언제나 공존하듯이 당장은 불행이 워낙 큰 것 같아도 생각을 바꾸어 가면 행복도 존재하고 있음을 언젠가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의 실마리를 잡을 기회가 먼 미래에 올지도 모르는데 생명을 버리고 난 다음에는 그러한 기회를 맞이할 가능성이 0%로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서둘러 미리부터 인생의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것은 되 돌이킬 수 없는 가장 안타까운 선택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을 보고 그런 행위 자체가 어차피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 치부하는 경향도 더러는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니 세상을 떠난 것은 네 책임일 뿐이야”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부모보다 더 먼저 세상을 떠나니 너는 불효자야” 이런 얘기도 합니다. 사람들 생각이 이렇다보니 당사자가 극단적인 심리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주변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이끌어내기 더욱 힘듭니다.

자살에 도달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흔히 가족입니다. 그 역할의 출발은 상대방의 진정한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헤아려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의 외적인 상태, 즉 학업성적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내적인 상태, 즉 마음의 상태와 심리에는 덜 관심을 기울일 때에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나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부모도 인간인 이상 아이에게 잘못할 수도 있고 지나치게 집착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아이를 괴로운 상태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시그널이 나타날 때에는 뒤늦게라도 심각성을 깨닫고 되돌아 봐야합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사람들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시그널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그런 시그널의 심각성을 통상적으로 간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간과하고 무시하는 이유는 시그널이 같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에 맞는 생물이 모두다 다 죽지는 않습니다. 생물에 따라서는 날아오는 돌을 가볍게 튕겨내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또는 그 돌에 즉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모래와 같은 작은 입자에서부터 큰 바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돌을 서로에게 던지면서 살아갑니다. 모래사장에서 서로에게 모래를 뿌린다고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래를 맞으며 낄낄대며 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자가 모래보다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단단해짐에 따라서 어느 시점부터는 그것을 맞는 사람이 괴로워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임계점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 다릅니다. 자신은 꿈쩍도 안할 상황이라도 상대방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똑같은 상황에서 전에는 그런 정도에는 꿈쩍 안 하던 사람이라도 상태가 예전과 달라지면 크게 영향 받을 수도 있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는 항상 세균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평소에는 어떤 세균이 몸에 들어와도 꿈쩍 안 할 것도 몸의 상태가 쇠약해 있거나 특정 병에 걸려있으면 앓게 될 수도 있고 심지어 합병증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즉 이와 같이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영향이 크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균에 비유한 육체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상태에서 바라보면서 상대방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과 상대방의 상태를 기준으로 바라봐야합니다.

저와 친한 사람의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시대가 되어야합니다. 왜냐면 그런 사건이 흔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드물게 일어나는 사례라면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입니다.

‘2006년도 OECD 건강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1위이며 OECD 회원국의 평균에 비해서 무려 92%나 더 높다고 조사되었습니다. 더욱이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이 2001년 10만명당 11.9명에서 2006년 11.2명으로 소폭 낮아진 반면 우리나라는 15.1명에서 21.5명으로 42%나 증가했습니다. 증가율도 1위인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는 우리나라가 '행복국가'가 아닌 '불행국가' 1위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개개인의 행복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오히려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지도 모릅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2007년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미국이 1위, 싱가포르가 2위, 우리나라는 29위이며, 그리스는 36위입니다. 그런데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에서는 우리나라가 21.5명인데 반해 그리스는 2.9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실로부터도 우리나라가 그리스보다 더 잘 살고, 수출도 더 많이 하고, GDP도 더 크고, '국가경쟁력'이 더 높다고 해서 '행복경쟁력'도 더 높은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30여명, 연간 1만200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이유를 사회적으로 찾아본다면 매우 복합적이겠지만 한 개인의 힘으로는 사회 전체를 주도적으로 바꾸어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개인 입장에서 국가의 행복경쟁력 높이는 것은 할 수 없더라도 한 가정의 행복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마음먹고 노력하겠다면 할 수 있습니다.

돈, 재산, 성적, 학벌, 권력, 자존심, 명예 등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데 필요한 수단이지 삶의 최우선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최악의 경우에 그런 것들을 잃어버릴 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그런 것이 최우선 가치이며 그런 것을 획득하는 경쟁만이 최고의 선이라고 사람들에게 주입시킨다면 사회 속의 동물인 개개인이 자유롭게 독립적 사고를 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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