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사설탐정 '이태원의 슈퍼 경찰'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 2008.09.08 09:09

[명품의그늘<하>]짝퉁단속도 사업일부… 소비자 의식개선 '뒷짐'

▲서울 이태원의 짝퉁 골목에서 20대 여성들이 짝퉁 배낭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국내 '짝퉁 명품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서울 이태원의 한 지하상점.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왔지만 인기척이 없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주인은 한참 후에야 문을 열어줬다. 장사는 뒷전이고 무엇에 쫓기는 듯 동업자와 긴박하게 통화하고 있었다. "단속 떴는데 가방을 그대로 두면 어떡해. 옷은 상표 다 뗐어. 가방은 아예 접어. 애프터서비스(AS)도 지금은 안돼." AS를 받으러 가게로 들어온 한 여성고객은 택배로 붙이라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짝퉁가방엔 아예 처음부터 로고가 찍혀 있지 않았다. 로고가 찍히지 않은 제품은 매장에 내놓고 팔아도 단속에 걸리지 않지만 로고가 붙은 이미테이션은 단속대상이다.

"특SA급(진품과 유사함이 최상인 모조품) 가방은 어딨냐"는 질문에 주인은 "계산 먼저 하면 집으로 배송해준다"고 말했다. 샘플 하나 보지 못하고 물건을 사야 한다는 뜻이었다. SA급이란 짝퉁시장에서 '스페셜A급'을 일컫는 말이다.

가게 안에서는 이른바 'SA급' 짝퉁을 팔지 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창고를 따로 두고 철저히 선주문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

↑이태원 짝퉁 상가의 한 상점.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하지만 짝퉁 판매상들에게 진짜 두려운 건 경찰보다 루이비통 단속반이었다. 루이비통코리아가 직접 고용한 단속 직원들은 이태원이나 동대문에서 '슈퍼경찰'로 통한다.
 
이태원의 한 상점 주인은 "루이비통코리아는 전직 경찰이나 형사를 사설탐정으로 고용해 불시에 들이닥친다. 가방 하나만 걸려도 현장에서 합의금으로 수백만원을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루이비통 단속직원들이 제시하는 합의금 액수는 산정근거를 알 수 없다"며 "그래도 지은 죄가 있으니 군말 않고 합의금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발시 루이비통코리아가 제시하는 합의금 산정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상인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차라리 경찰에 벌금을 내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남자 손님이 오면 손님을 가장한 단속반이 아닐까 싶어 무조건 "물건 없다, 안판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또 다른 짝퉁 판매상은 "요즘은 단속이 너무 심해 제조장인들도 씨가 말랐다"며 "제대로 된 공장(제조공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명품 짝퉁이 적발되면 판매자와 다르게 제조자는 실형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단속이 심해질 때마다 '제조 장인'들은 잠수를 탄다. 단속이 심해지면서 짝퉁가격도 뛰었다. 특SA급 '루이비통 모노그램 스피디30'의 판매가는 15만~17만원. 짝퉁에 정통한 동대문 상인에 따르면 제조원가는 3만원을 넘지 않는다. 최근엔 위험수당으로 매입원가가 1만~2만원 올랐다고 했다. 아예 단속을 피해 홍콩으로 '이사'간 업체도 많다. 현재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국내 인터넷 짝퉁 쇼핑몰 대부분은 사무소가 홍콩에 있다.
 
온라인 짝퉁쇼핑몰 L사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MSN메신저로 상담을 받는다. 한국에 근거지가 있었지만 단속이 심해지자 올해 폐쇄했다. 중국산 짝퉁을 홍콩에서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한국에 판다. 이렇게 물 건너온 중국산,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나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로 둔갑해 팔린다.

L쇼핑몰 관계자는 "진짜 명품업체의 중국 아웃소싱 공장에서 밤에 만드는 짝퉁"이라며 "최근 세관의 단속이 심해져 운송비가 늘어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되는 브랜드인 루이비통이 한국에서만 짝퉁을 단속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명품 전문기자 데이나 토머스의 저서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에 따르면 루이비통 본사는 변호사 40명을 고용하고 사설탐정에게 용역을 주는 등 연간 1810만달러를 짝퉁 단속에 쏟아붓는다.

2004년 기준으로 루이비통이 감옥으로 보낸 짝퉁업자는 무려 1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20여회 짝퉁공장을 급습하는 것.

한 패션업계 전문가는 "루이비통이 짝퉁을 근절하고 싶은 거라면 매스티지(대중적 명품, mass+prestige) 마케팅부터 접는 게 순서"라며 "대중적이지 않은 가격에 대중의 지갑을 노리면서도 짝퉁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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