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공짜''할인'으로 지르게 만든다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 2008.09.09 10:22

[머니위크 커버스토리]미끼 경제학

"공짜로 처방전을 써주는 의사의 충고는 듣지 마라."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다.

하지만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짜'나 '공짜와 다름없는 헐값'의 미끼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매우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황에는 더욱 그렇다. 기업들은 꽉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 '미끼상품(loss leader)'을 던지고, 물가고에 시달리는 소비자 역시 기꺼이 '달콤한 미끼'를 물고자 한다.

간혹 속임수로 사람을 꾀어내는 데 쓰이는 미끼도 있지만, 고물가시대에 너무도 반가운 '밑지고 판다'(?)를 실천하는 미끼도 많다.

이러한 미끼만 노리는 체리피커와 이들을 공략하는 체리피커 전용 가게의 등장까지… '물고 물리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끼의 경제학'. 과연 소비자와 기업 중 누가 웃을까?

◆상식을 뛰어넘는 미끼의 효과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최근 내놓은 저서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흥미롭고 기발한 '미끼'의 효과를 소개했다.

한 경제매거진의 마케팅 방법이 그 좋은 예다.

1. 온라인판 정기구독 59달러
2. 오프라인판 정기구독 125달러
3. 온라인 및 오프라인판 정기구독 125달러

언뜻 보면 2번과 3번은 잡지사의 실수로 동일한 가격이 잘못 책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교묘한 상술이 숨어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이 세가지 문항을 주고 선택하라는 실험을 한 결과 1번 온라인판을 선택한 학생은 16명, 온라인판 및 오프라인판 패키지를 선택한 학생은 84명으로 나타났다.

다음에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2번을 빼고 1번과 3번 두 가지 중 택일을 하라고 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뺀 항목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항목이므로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달랐다.

이번에는 59달러짜리 온라인판을 선택한 학생은 68명으로 늘어났고, 125달러자리 패키지판을 선택한 사람은 32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에 대해 댄 애리얼리는 "이러한 결과는 비이성적이지만 예측가능한 부분"이라면서 "2번 오프라인판 정기구독이라는 항목 때문에 모두 패키지판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미끼'에 현혹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댄 애리얼리의 실험 결과대로 라면 '미끼'는 꼭 공짜 사은품을 제공하거나 할인 등의 직접적인 혜택이 없어도 '정신적인 미끼'만으로도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셈이다.

◆불황일수록 더욱 빛나는 '미끼 마케팅'

#1. "20년 전 가격으로 드립니다."

신문을 뒤적이던 주부 김모(29) 씨의 눈길이 순간 고정된다. 마트의 기획행사 소식이다. '수박 1통 6800원, 세제 3kg 6900원, 롤티슈 30롤 9000원…'

수첩에 행사 목록을 꼼꼼히 기록한 뒤 장바구니를 챙겨 마트를 향해 내달린다. 김씨는 "장바구니에 담기는 상품의 우선순위는 브랜드가 아니라 얼마나 싼가 하는 가격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연일 치솟고 있는 물가에 지친 서민들에게 초저가 상품은 더없이 반가운 대상.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의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지갑이 열린다.

실제 롯데마트가 지난 8월7일부터 13일까지 50여개 주요 생필품을 20년 전 물가 수준으로 판매한 '20년 전 물가 기획전' 당시 마트 전체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 올랐다. 특히 행사상품이 집중돼 있는 생필품군의 경우 7% 상승했다.

나근태 롯데마트 홍보팀 과장은 "물가가 치솟으면서 마트 매출이 떨어지고 방문율도 떨어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20년 전 물가 기획전' 당시의 매출 신장률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초저가 상품의 할인율은 40~70%. 이른바 박리다매 상품이다. 나 과장은 "물건당 이윤은 줄이지만 많은 물량을 준비해서 팔기 때문에 소비자도 마트도 만족할만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2. '고물가 시대엔 문화강좌도 초특가로 듣는다.'

백화점 문화센터엔 '1000원 특강'이 등장했다. 고물가로 문화비 지출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백화점 업계가 특가 문화상품으로 고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8월26일 오전 11시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주선희(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의 인상학' 강좌엔 '저비용으로 수준 높은 문화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당초 예정됐던 강의실이 더 큰 강의실로 급히 변경됐다. 이날 강좌는 20명 예정이었지만 두배가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1000원 특강에 참석한 아나운서 출신의 신선희(27) 씨는 "평소 인상학이나 이미지 메이킹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히 인터넷 검색으로 1000원 특강을 발견하고 신청했다"면서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 강사의 알짜배기 강좌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롯데백화점은 본점에서 연예인 '현영의 재테크 다이어리' 특강을 비롯해 풍수인테리어, 황금희의 명품 피부 만드는 뷰티 씨크릿 레시피 등의 특강을 1000원에 판매해 호응을 얻었다.

애경백화점도 1000원 강좌를 대거 마련했다. '실속형 리폼 인테리어의 모든 것', '펀드/부동산 투자전략', '우리 딸 알파걸로 키우는 방법'등 1000원만 내면 들을 수 있는 특강이 8월 말 전후로 다수 진행됐다.

이 같은 1000원 강좌를 마련한 것에 대해 전준희 애경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을 반영해 양질의 강좌를 1000원에 새롭게 선보인 것"이라면서 "적은 금액이지만 1000원을 내고 신청ㆍ등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료 강좌보다 호응과 출석률이 높다"고 전했다.

◆미끼마케팅, 소비자vs기업 누가 웃을까?

얄팍한 속임수가 아니라 원가를 파괴한 수준을 '미끼'상품이라면 기업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돈 대신 얻는 것은 무엇일까.

김종남 국민은행 마케팅부 팀장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기업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홈페이지의 문화전용 사이트인 '컬처인KB'을 통해 영화 할인 및 초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매주 화요일 11시에 열리는 '만원의 초대' 이벤트는 단 10분이면 매진되는 호응도 높은 이벤트. 이 행사가 열리는 날은 다른 날보다 홈페이지 접속률이 평균 2~3배 높다.

김 팀장은 "고객들에게 문화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5만원짜리 공연 티켓이라면 4만원은 은행이 부담하고 1만원에 초대하는 것"이라면서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은 고객들이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이러한 이벤트는 새로운 문화서비스를 확대한 것이라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미끼마케팅은 이러한 홍보 효과 뿐 아니라 매출 증대에도 기여한다. '공짜' 또는 싸게 주면 밑질 것이라는 것은 단순한 소비자의 셈법인 것이다.

지난 7월 인터넷쇼핑몰 G마켓에서는 인터넷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파쿠'라는 업체가 내놓은 990원짜리 티셔츠 때문이었다. 이날 '파쿠'는 이 '미끼' 티셔츠를 5000장 이상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990원은 분명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 망하려고 장사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G마켓 홍보팀의 정현정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원가 이하의 미끼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의 60~70%는 해당 판매자의 정상 상품도 함께 구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끼'만 따먹는 소비자는 30~40%에 그친다는 말이다.

이러한 '미끼'의 효과는 미끼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보면 한 눈에 차이가 보인다.

맥주체인점 가르텐비어는 지난 3월10일부터 4월9일까지 한달간 5만원 이상 결제한 고객에게 뮤지컬 브레이크 아웃 예매권을 무료 증정하는 이벤트를 펼쳤다. 이 기간의 매출은 이벤트를 열기 한달 전보다 약 300만원이 넘게 뛰었다.

홍성종 가르텐비어 홍보팀장은 "이러한 매장 이벤트는 매출 증대에도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장 이미지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며 "끊임없이 이벤트를 여는 매장은 '고객을 생각해주는 매장, 적극적인 사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고객을 또 다시 매장으로 불러오는 유입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미끼의 유혹을 덥석 문 소비자는 진짜 '저비용 고효율'의 소비는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마케팅전략실 수석연구원은 "꼭 필요했던 품목이 미끼로 나왔을 때는 구매하는 것이 알뜰 소비가 아니겠냐"며 "그러나 미끼상품의 주변에는 그럴듯한 다른 상품들을 배치해 또 다른 구매를 유도하는 게 미끼마케팅의 속성이므로 여기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보다 강경하게 '미끼의 유혹을 극복하라'는 지적도 있다. <돈 버는 소비 심리학>을 펴낸 에듀머니의 엄성복ㆍ이지영 재무컨설턴트는 "아무리 싸게 샀다고 하더라도 계획되지 않은 소비는 곧 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품목이기 때문에 결국은 낭비에 불과한 것"이라며 "가격보다는 필요에 맞추는 것이 절약하는 소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소비 계획' 여부에 따라 미끼 상품의 구매가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무리 공짜 혹은 초저가의 미끼가 달콤해도 소비 전에 '꼭 필요한가'라는 물음이 합리적 소비의 열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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