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의 치명적 유혹..삐끼라 부르리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 2008.09.09 10:23

[머니위크 커버스토리]사기와 상술..공짜는 없다

“쓰레기봉투를 공짜로 드립니다. 쓰레기봉투 공짜! 주부님들 서둘러 나오세요~.”

어느 일요일 오후,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던 주부 배모 씨는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에 잠이 깼다. 가정살림을 하는 주부들에겐 꼭 필요한데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 쓰레기봉투를 ‘공짜’로 준다는 말에 솔깃한 배씨는 주섬주섬 지갑을 챙겨들고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나갔다.

좁쌀, 주걱, 국수 등 갖가지 주방용품들이 놓여진 진열대 앞에는 이미 대여섯명의 주부들이 모여 있었다. 그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서 있던 상인은 중국 농산물에 밀려 고생하는 농민을 살리기 위한 행사라고 소개했다. 30여분 동안 계속되는 설명을 다 듣자 진열대에 놓여진 상품들을 공짜로 주부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좁쌀이며 주걱 등을 공짜로 받아 챙기며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에는 홍삼 제품이 있었다. 상인은 어려운 농민들을 위해 홍삼 한상자는 제값을 받고 한상자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공짜 상품을 받아들던 배씨 역시 상인의 말에 얼떨결에 홍삼 한상자를 28만9000원에 3개월 할부로 구매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심쓰듯 공짜 물건을 많이 나눠준 것이 아무래도 찜찜해 상인이 알려준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대표자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을 만큼 허술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최근 유행하고 있는 악덕 상술의 한 형태였다.

오승건 한국소비자원 홍보팀 차장은 “미끼 마케팅을 이용한 전형적인 사기의 한 형태”라며 “이럴 경우 소비자가 계약 체결 14일 이내에 업체 측에 청약 철회 의사를 통지하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업체 측에서 소비자의 전화를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으로 기한인 14일을 넘겨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의 제1원칙 중 하나다. 이 말은 미국 서부의 술집에서 술을 일정량 이상 마시는 단골들에게 점심을 공짜로 대접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공짜 점심을 위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술을 마신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술을 마시더라도 취하지 않고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곧 자신이 내는 술값에 점심 비용이 이미 포함되어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공짜나 초저가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아예 작정하고(?) 미끼를 던진 뒤 고액의 물건 판매를 유도하는 사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에 따르면 배씨의 경우처럼 건강상품을 미끼로 내건 피해사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오승건 차장은 “공짜 상품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일단 공짜로 물건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사기의 가능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며 “모든 공짜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일단 미끼 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제공한다든지 미심쩍은 점이 보일 경우엔 피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높은 물가에 한 푼이라도 아쉬운 소비자들에게 미끼 상품이 '천적'으로 돌변하는 순간은 이 같은 사례 뿐 만은 아니다. 단순히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미끼 상품들은 아무리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소비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구매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늘 경계 대상 1호 취급받곤 한다.


대학생 최성진(25) 씨는 지난 3월 UMPC(개인용 미니컴퓨터) 전문업체에서 무료 체험 이벤트를 실시한다는 광고에 체험단에 등록했다. 조건은 단 하나, 한달 동안 UMPC를 사용한 뒤 제품 사용 후기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UMPC를 사용해 보니 편리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지하철을 탔을 때나 이용 중에도 동영상을 다운 받아 볼 수 있다는 점 뿐 아니라, 휴대가 간편해 언제든지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편리했다. 최씨는 무료 체험이 끝나는 한달 뒤 50만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UMPC 하나를 구매했다. UMPC 관련 장비를 장만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무료 체험 이벤트로 인해 최씨는 계획에 없던 돈을 크게 지출하게 된 것이다.

<부자가 되는 기술>의 저자로 짠돌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대표 씨는 "미끼 상품의 유혹에 넘어가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욕심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미끼 상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미끼 상품으로 인해 계획에 없던 지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씨는 "아무리 싼 상품으로 유혹하더라도 자신에게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며 "쇼핑리스트를 작성하는 방법 등으로 미끼 상품의 유혹을 피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들은 소비자를 알지만, 소비자는 그들을 모른다

주부 안영진(35) 씨는 지난달 아이와 함께 집 근처의 대형 마트를 찾았다가 햄을 구입하게 됐다. 시식코너에서 미리 맛을 본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는데다 1+1 행사를 통해 많은 양의 제품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좋은 기회다 싶어 한 박스 분량의 햄을 한꺼번에 구입한 안씨는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후회했다. 프라이팬에 햄을 올려놓고 조리를 하다 보니 제품마다 분홍색 국물이 자꾸 배어 나왔던 것. 안씨는 마치 색소처럼 보이는 그 국물에 신경이 쓰였지만 이미 창고에 한 가득 쌓아놓은 상품을 먹지 않고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씨는 "햄 사건이 있은 후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실감했다"며 "거의 공짜에 가까운 싼 가격에 판매되는 상품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공짜로 판매되는 모든 상품의 질이 다 좋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제품이 미끼로 제공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근재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안씨의 상황을 '정보의 불균형'으로 설명한다. 초특가의 가격에 상품이 판매될 경우 대부분의 소비자는 '싼 가격'에 현혹된 나머지 제품의 포장 상태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네 슈퍼가게에서 우유 10개의 묶음을 단돈 100원에 판매한다고 생각해 보자. 소비자는 십중팔구 ‘그것이 미끼’임을 알아차린다. 미끼 상품이 없을 경우 같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양과 같은 수치들이 재빠르게 머릿속에서 계산된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자. 소비자는 그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건 단지 제품의 가격과 그에 비례한 용량 정도일 뿐이다.

이 교수는 “아무리 가격적인 혜택이 크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평소에 잘 알지 못하는 제품에 대해 손쉽게 구매를 결정했을 경우 잘못된 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끼 상품을 구입할 때는 우선적으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제품을 위주로 신중하게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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