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마타하리'가...여간첩 누가 있었나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 2008.08.27 19:28
↑ 원정화

여자 간첩. 간첩이라는 충격적 소재에 여성이라는 '성'적 의미까지 붙어 그 자체로 대중들에게 자극적이다.

여간첩은 대중의 호기심을 넘어 첩보전에서 가치도 높다. 고급 정보를 가진 남성에게 접근도 쉽고 의심받을 확률이 낮아 신분을 위장하기도 좋다.

수원지검, 경기지방경찰청, 국군기무사령부, 국가정보원 경기지부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여간첩 원정화(34)를 국가보안법 상 간첩 및 특수 잠입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합수부에 따르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원정화는 15살 때부터 남파공작 훈련을 받아왔으며 간첩활동 중에 성로비도 펼쳤다.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군사 기밀과 탈북자 정보를 관리하는 남성들에게 접근했고 현역 육군 대위와 동거도 했다. 21세기에 등장한 '한국판 마타하리'다.

한국의 '원조 마타하리' 김수임, '동양의 마타하리' 가와시마 요시코 등 세간의 눈길이 쏠린 여간첩에게 '마타하리'는 단골 호칭이다.

여간첩의 대명사가 된 마타하리의 본명은 M.G. 젤러, 1876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19살 때 식민지 인도네시아 주둔군 장교와 결혼했지만 1901년 이혼하고 이후 프랑스 파리 댄스홀 물랭루주에서 댄서로 활동했다. 인도네시아어로 '태양'을 뜻하는 마타하리라는 이름도 이때부터 썼다. 파리 사교계에서 인기를 끌던 그는 독일 베를린 체류 중에 1차 대전을 맞았고 프랑스와 독일 스파이를 오가는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마침내 양쪽으로부터 의심을 받은 마타하리는 1917년 프랑스에서 반역죄로 총살당했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가 암호를 알아낼 줄 알면서도 마타하리가 독일 스파이라는 사실을 전송했다고 알려졌다. 마타하리는 처형대에 모피코트 차림으로 올랐다.

↑ 영화 '천도방자(川島芳子)'에서 가와시마 요시코 역으로 분한 매염방


가와시마 요시코는 청나라 왕족 출신이다. 청나라가 망하고 1912년 6살에 일본에 양녀로 보내져 만주국 수립과정에서 일본 간첩으로 활약했다. 그는 남장을 즐겨 '남장미인'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만주국 수립을 청조의 재건으로 생각했던 요시코의 일생은 1990년 홍콩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 김수임(오른쪽)


김수임의 삶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일제시대 이화여전 출신의 인텔리 여성 김수임은 해방 후 영어실력을 무기로 사교계의 여왕으로 활동했다. 경성제대 출신의 엘리트로 독일 유학파 출신의 공산주의자 이강국(북한 초대 외교부장)과 사랑을 나누며 미군의 정보를 빼냈다. 특히 당시 실세인 미8군사령부 헌병감 베어드 대령과 동거해 영화 같은 3각 관계가 남한 사회를 들끓게 했다. 김수임은 1950년 6월28일 총살됐다.

그러나 AP통신은 지난 17일 "최근 비밀이 해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건을 조작한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군사정보에 접근 권한이 없었고 이강국도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조직의 요원이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확실히 조작이었던 여간첩 사건도 있다. 1987년 1월 살해된 수지 김(김옥분)이 그렇다. 국가안전기획부는 남편 윤태식이 사업자금 문제 등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북한 공작원 수지김이 미인계를 이용해 해외 주재 한국 상사원을 납북하려 한 간첩사건으로 규정했다. 진실은 그로부터 14년이나 지나 밝혀졌다.

북한 권력서열 22위로 '총리급 여간첩' 이선실(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1987년)의 김현희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여간첩들이다. 지난해 활동을 마감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 이들 사건은 사실로 밝혀졌으나 적어도 대선정국에서 여론몰이로 이용됐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이처럼 역사 속에는 많은 여간첩, '마타하리'들이 있었다. 전쟁과 이념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활동했던 이들이다. 가혹한 시대의 희생양인지 '성'을 무기 삼은 반역죄인인지 진실은 '그녀'들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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