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그루지야사태 간단치않은 이유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 2008.08.22 11:33

유가 120달러 회복 등 상품가격 다시 급등세

달러 약세와 함께 미국과 러시아간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21일 국제 상품가격이 급등했다. 유가는 4.9%(5.62달러) 뛰며 배럴당 120달러선을 회복했고 금값은 2.8%(22.70달러) 급등했다.

상품지수인 로이터제프리CRB지수가 21일 3.7% 급등했다. CRB지수를 구성하는 은과 플래티늄 가격도 각각 도 5.2%, 6.6% 상승했다. 이날 플래티늄의 가격 상승률은 하루 상승률로 2001년 9월 이후 최고치다.

일각에서는 그루지야 사태로 미국 등 서방세계와 러시아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양분했던 과거 냉전의 망령이 탈냉전 이후의 세계경제 질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본격적인 그루지야 사태 여파가 시장에 닿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날의 상품 급락은 그루지야 사태가 세계 경제에 드리울 암운의 서막에 불과하다.

◇ '설레발 시장'은 올림픽 삼매경?

세계 금융시장은 조그마한 지정학적 불안이나 기상재해에도 쉽사리 흔들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멕시코만으로 향하는 허리케인에, 이란의 미사일 발사에 유가는 춤추고 증시는 망가진다.

그루지야 사태는 분명 이 이상의 사건이다. 하지만 그루지야 사태 초기 월가의 반응은 지나치게 침착했다.

그루지야 사태 발발 이후 수일 동안 뉴욕 증시는 강세장을 연출했다.
사태의 원인이 된 남오세티아가 유전지대에서 빗겨난 탓일까? 유가는 하락세를 이어갔고 기타 상품 가격도 덩달아 떨어졌다. 이전의 과잉, 설레발 반응과는 전혀 딴 판이다.

마켓워치의 칼럼니스트 데이빗 캘러웨이는 이 같은 반응이 올림픽 등 몇가지 굵직한 사안에 월가의 시선이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캘러웨이는 지구 반대편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과 연일 불안을 키워가고 있는 패니매, 프레디맥 등 미 양대 국책 모기지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문제가 그루지야 사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러웨이는 월가가 러시아 증시의 최근 약세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RTS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0% 이상 급락했다. 현저한 하락세지만 월가는 이를 유가 하락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의 영향은 크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 구소련 해체 시기와 닮은 꼴


월가가 보는 러시아는 이머징마켓일 뿐이다.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세계경제의 변방에 위치해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덩치 큰 이머징마켓은 다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군사력과 자원을 지니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에 대한 월가의 반응은 과거 구소련 해체 때와 유사하다.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서기장이 물러나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던 당시 월가의 관심은 살로몬브라더스의 국채 스캔들과 동부 해안에 접근 중이던 허리케인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허리케인은 별 피해없이 소멸됐고 살로만브라더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 소련은 해체됐고 이후 세계는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까?

불과 2주 전만 해도 미-러 관계는 미 대선의 주요 쟁점이 아니었다. 모두들 압도적 전력차만큼 전쟁이 금방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단기전 관측을 비웃듯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주요 석유 수출항을 봉쇄하고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통제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석유 생산국이며 그루지야 지역은 카스피해 원유의 지중해 수출용 송유관이 지나가는 요충지이다.
러시아는 EU국가 원유 소비량의 4분의 1,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삼아 공급을 중단할 경우 유럽은 중동 등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한다. 공급확대 여력이 거의 없는 국제원유시장에서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가격 폭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MD)체제 구축을 위해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10기를 폴란드에 배치키로 합의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러시아는 미국의 공세에 대응, 시리아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설 태세다. 러시아는 유럽 지역에서의 군비 경쟁 심화 우려도 제기했다.

전력차가 여실한 러시아와 그루지야간의 일방적 국지전이 점차 미국과 러시아간의 패권 다툼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부정적 영향을 잘 알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루지야 사태를 확전시키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언제든 정치적 선택의 실수는 발생할 수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화된 국제 질서를 무너뜨려 과거의 위상을 찾고 싶어 하는 러시아와, 러시아의 도전을 간과할 수 없는 미국 모두에게 오판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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