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 알고도 못쓰는 이유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08.08.22 09:07

[말랑한 경제- 카스테라]

"소득세는 도대체 얼마나 내리는 거야? 내리긴 내리는 건가?"

올들어 신문을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이런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 "소득세율이 인하된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이후 4개월이 흐르는 동안 각 언론매체에서는 "1%포인트 내린다", "2%포인트 내린다" 또는 "2009년부터 내린다", "2010년부터 내린다" 등 엇갈린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데 정작 정부에서 공식 발표된 내용은 없었다.

국회를 거쳐 내년부터 적용될 '세제개편안'의 발표(9월1일)가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득세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얼마나 인하될지는 어떤 매체도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 모르는 기자는 몰라서 못 쓰지만, 아는 기자 역시 알면서도 못 쓰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바로 '엠바고' 때문이다. 사전에 보도될 경우 큰 부작용이 우려될 때 취재원이 기자들을 상대로 일정한 시점까지 보도자제를 요청하면 출입기자들이 합의해 지키는 것이 엠바고다. 기자들이 엠바고 요청을 거부할 수도 있다. 다만 엠바고를 지키기로 합의한 뒤 이를 어긴 매체에 대해서는 기자단 회의를 거쳐 '경고' 또는 '일정기간 출입정지' 등의 자율징계가 내려진다.

문제의 '세제개편안'의 경우 대체로 매년 엠바고가 잡힌다.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알 권리'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엠바고가 없으면 매체 간 보도경쟁이 과열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 이 과정에서 자칫 오보가 양산돼 국민들에게 혼란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정책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세제개편안 엠바고가 온전히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종 욕심없는 기자는 없다보니, 항상 크고 작은 '엠바고 파기'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제개편안에 대한 엠바고가 설정된 것 지난 14일. 그 후에는 세제개편안에 대한 보도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20일 한 조간 신문이 "올해 세제개편안에 장기보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방안이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안은 제외된다"고도 전했다. 상당수 기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엠바고 원칙에 따라 쓰지 않은 내용이다.

이를 놓고 2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기자단 회의가 소집됐다. 쟁점은 엠바고 파기에 대한 '제재'가 아닌 엠바고 자체의 '존속'이었다. 일부 매체는 "이번 엠바고 파기를 계기로 아예 세제개편안에 대한 엠바고를 해제하자"고 주장했다. 1주일째 알면서도 기사를 쓰지 못하는 데 대한 갑갑함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선 "부정확한 기사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고 논쟁은 끝내 다수결로 이어졌다. 결과는 '엠바고 유지'. 엠바고를 어긴 매체에는 재위반시 가중제재를 전제로 '엄중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이때까지도 세제개편안의 발표는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기자단 회의 직후 세제개편안의 발표시점이 다음달 1일로 1주일 미뤄졌다. 세제개편안을 추가로 손질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재정부 기자들은 1주일 더 엠바고의 답답함을 견뎌야 할 처지가 됐다. 안타깝게도 소득세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도 1주일은 더 가야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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