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가 본 '투자 유망' 분야는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8.08.14 12:21

[박창욱이 만난 사람]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①

↑사진=이명근 기자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나오는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미친 거요? 장차 만들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사람들은 어떤 일에 몰두하는 이에게 종종 ‘미쳤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 보다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 대한 역설적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그 ‘미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진대제(55, 사진)는 지금까지 항상 어떤 목표에 ‘미쳐 있던’ 사람이었다. 삼성전자에선 최고경영자(CEO)로서 ‘반도체 세계 최강’이라는 꿈에 미쳐 있었고, 지난 정부에선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아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정보기술(IT)강국’이라는 목표를 위해 내달렸다. 그런 그가 지금은 과연 어떤 일에 미쳐 있을까.
 
# 펀드 자본주의
 
지금까지 진대제와 ‘성공’이란 단어는 거의 동의어에 가까웠다. 그는 세계 최고 기업의 CEO였고, IT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관료로서도 명성을 쌓았다. 그는 2006년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라는 벤처투자회사를 설립, 대표를 맡아 일하고 있다. 펀드를 조성해 유망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투자한다.

과거 세상의 정점에 서 있다 ‘작고 조용한’(?) 곳으로 옮겨온 그에게 어떤 상실감 같은 게 생기진 않았을까.“전 지금이 더 좋아요. 예전보다 회사가 작다고 해서 하는 일이 덜 중요한 것도, 하는 일에 대한 성취욕이 덜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어려운 점을 이해하고, 그들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회사로 커나가는 걸 돕는 일입니다. 아주 큰 명분이 있는 일이지요."

 
↑사진=이명근 기자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잭 웰치 전 GE회장 같은 세계적인 기업가들도 지금 펀드 회사에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시장의 생태계를 투자 펀드가 변화시키는 시대가 올 겁니다. 펀드가 회사를 사고팔고 하면서 허약한 부분도 떼 내고 경쟁력도 키우고 하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이 부실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선 중소기업의 육성에 정부의 역할이 크지만, 선진국에선 이 일을 벤처캐피탈이 합니다."
 
그래도 그만한 능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흔하지 않은데, “더 큰 회사에서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젠 아예 없는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여러 가지 제의를 받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총장으로 오라는 얘기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젠 조직에 매이고 싶지 않아요. 직장보다는 직업의 개념으로 아주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 셈이죠. 또 제가 성격상 한 군데 안주해 본 적이 없어요. 삼성에 있을 때만 해도 물론 승진하면서 보직이 바뀐 부분도 있지만, 메모리에서 비메모리로 또 디지털미디어 부분으로 계속 새로운 걸 하기 위해 뛰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속내에 다시 정치에 뛰어들 의향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2006년 경기도 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좁은 의미의 정치활동인 정당인으로서 선출직에 도전하는 일은 이제 다시 하지 않을 겁니다. 그 쪽엔 자질이 있는 분들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광의의 정치활동인 장관으로 일할 때 느낀 점인데요, 기업가로 일하는 것보다 정부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그야말로 진이 빠지더라고요.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서 주주가치를 증대시키고 직원 연봉 잘 주면 됩니다. 그러나 정부 일은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관을 조정해야 하므로 훨씬 힘든 일입니다. 흔히 정부에 대해 편하게 비판을 하는데요, 정부를 믿어주고 참고 기다려줄 필요도 있습니다.”
 
# 중소기업
 
진 전 장관은 정치보다는 중소기업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동안엔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잘 몰랐다가 정부 일을 하면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애로사항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진대제 AMP(최고경영자과정)’를 운영하면서 중소기업 사장님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애환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

 
그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생태계가 아주 좋지 않다고 했다.

“시장이 시장원리로만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불평등한 관계로 대기업에 종속돼 있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삼성에 공급하는 업체는 LG엔 웬만해선 납품하지 못합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삼성에도 팔고 LG에도 팔고, 노키아 소니에도 팔 수 있어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한 곳에만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당장은 먹고 살 순 있을지 몰라도 결코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설혹 상장을 한 다 해도 주가가 오르지 못하고요.”
 
↑사진=이명근 기자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건전한 산업생태계를 위해 일단 먼저 대기업이 좀 더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일반적인 의미의 대기업이 아니라 `초대기업'입니다. 단순히 기업만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이익과 공적인 책무도 있다는 걸 느껴야 합니다.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만, 중소기업이 여러 대기업에 납품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숨 쉴 틈을 줘야 합니다.”
 
대만의 예를 들면서, 진 전 장관은 정부정책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만은 더 이상 중소기업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 곳의 중소기업들은 이미 우리 기준으로는 글로벌 시장을 누비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엔 다양한 정부정책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대만 중소기업들은 공동구매를 통해 대기업 수준의 자재구매력을 갖도록 해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뭉쳐서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저 `중소기업 육성'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덩치를 확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재벌위주 정책에서 바뀌어야 합니다. 재벌은 그냥 놔둬도 잘 합니다. 옛날 대기업에 해주던 걸 지금 중소기업에 왜 못해 줍니까.”
 
# 차세대 먹거리
 
벤처캐피탈리스트인 그에게 투자할만한 유망 분야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었다. "빌 게이츠의 견해도 그렇습니다만, 교육산업은 건강분야와 함께 중요한 차세대 먹거리 산업입니다. 특히 IT와 결합하면 큰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역시 영어 'e러닝' 교육업체 2곳에 투자한 바 있다. 하지만 영어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의 부재로 인해 생긴 시장인데.

"아닙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그 역할이 달라요.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워야 하는 건 우리의 숙명입니다. 또 언어구조상 습득하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콘텐츠와 솔루션은 매우 발달해 있습니다. IT기술과 결합한다면 이는 수출하기 아주 좋은 지식정보산업입니다. 우리나라 자체로도 매우 큰 시장이고요."
 
그는 아울러 '인공지능' 관련 산업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까진 자동화시스템으로 힘이 드는 노동을 도와주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정보를 수집하고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는 분야가 각광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로봇 분야라든가, 기존의 타이프로 입력하던 것을 말로 입력한다든가, 종이처럼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 분야 같은 것이 되겠지요."

  ◆진대제는...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7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74년)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83년) △미국 IBM 근무(83∼85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상무이사, 메모리사업 본부장,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85년∼2003년) △정보통신부 장관(2003년∼2006년)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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