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의 위약, 속 타는 홈에버 FI

현상경 기자 | 2008.08.13 13:44

[thebell note]6월말 원리금 반환 못지켜…공정위 심사는 겨우 시작단계

이 기사는 08월12일(10:1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기업 M&A를 결혼에 비유할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주례처럼 등장한다. 기업결합과정에서 독과점 여부를 확인, 최종 승인도장을 찍어줘야 M&A가 완료되기 때문.

지금 공정위의 이런 '성혼선언'을 학수고대하는 회사들이 몇 있다. 바로 이랜드의 홈에버(옛 한국까르푸)인수에 투자했던 재무적 투자자(FI)들이다.

그간의 사정은 이렇다. 2006년 이랜드가 한국까르푸를 사들일 때 화인파트너스 등 6곳의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금을 댔다. 전체 인수자금의 30%인 5100억원을 우선주(1700억원)와 전환사채(3400억원)를 인수하는 형태였다. 추후 기업공개(IPO)등으로 대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랜드로 넘어간 홈에버가 망가지면서 이들은 '손절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들에게는 이랜드로부터 받은 풋옵션, 즉 '약속한 가격에 되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홈에버 투자자들은 얌전했다. 보장받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이랜드가 콜옵션을 행사하는 방식을 취하도록 해줬다. 덕분에 이랜드는 대외적으로 "투자자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제가 필요해서 투자자들의 주식을 되사주는 것입니다"라고 어깨에 힘을 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랜드는 다른 투자자들을 구하는 작업이 막바지 진행 중이며 이들에게서 돈을 받으면 주식 값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 약속기한이 6월30일이었다.

문제는 이런 계약을 공표한지 단 보름여 뒤에 생겼다.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공지도 하지 않고 이랜드가 회사를 통째로 팔아버린 것.

테스코로의 홈에버 매각은 투자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지만 이미 콜옵션 행사여부가 확정된 마당이라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랜드와 FI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대로 6월 말까지 주식 값을 낼 수가 없습니다. 새 투자자를 구할 계획이 무산된 터라 드릴 돈이 없네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돈이 있어야 갚지 않겠습니까? 테스코로부터 매각대금을 받으면 드리겠습니다"
"매각대금이 언제 들어오는데요?"
"공정위가 기업결합심사를 승인하면 들어옵니다"

너무나 신사적이었던 FI들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며 한번 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우리가 언제까지 이랜드 사정만 봐줘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무자가 돈이 없어 빚을 못 갚는데야 별 도리가 없었다.

현행 규정상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는 심사 시작 후 최초 30일, 그리고 추가적으로 최장 90일간의 심사기간 연장 이후 결론이 내려진다. 테스코가 홈에버를 사들이겠다고 기업결합 신고서를 낸 게 5월16일. 대략 8월 중순~9월 초쯤이면 결론이 날 것으로 투자자들은 기대해 왔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예상치 못한 복병이 또 하나 등장했다. 공정위는 홈에버 인수의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근거자료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양측에 수차례 걸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추가 자료를 요청한 것이 7월말. 그러나 이 자료는 아직 공정위에 전달되지 못했다.

"심사일수로만 따지면 120일 가운데 한 2일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공정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약속받은 기한보다 6개월이나 더 지난 다음에나 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믿고 투자했는데 제때 원금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 탓일까. 일차적으로는 2년 뒤 일어날 일을 예측 못한 투자자의 책임일 것이다. FI들이 너무 순진했다는 자성론도 적지 않다.

그 누구도 이랜드의 변화무쌍한 전략(?)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앞으로 다시 이랜드와 딜을 한다면? 아마도 FI들의 태도와 전략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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