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처음 타오른 5월2일 무슨 일이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 2008.08.11 10:18

[촛불, 그 빛과 그림자-上: 점화에서 발화까지]

ⓒ머니투데이DB
#5월1일 오후 서울 한복판 청계광장 입구 횡단보도 한쪽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이명박 퇴진을 외치고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간다. 반대편에서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준비하느라 꼭짓점 댄스를 연습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5월3일,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서 앳된 여학생들이 ‘시집도 못 갔는데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죽게 돼 억울하다’며 열변을 토한다. 이른바 촛불소녀들이다.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열광한다.

48시간의 시간 간격도 나지 않는 양일의 한 가운데에는 촛불집회의 시작일인 5월2일이 자리한다.

촛불집회의 최대 배후로 지목된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은 4월29일 방영됐고 실제로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것은 4월18일로 5월2일과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5월2일은 촛불소녀들을 끌어모은 분기점이다. 365일 중 하루일뿐인 5월2일은 도대체 어떤 날이었을까.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등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심리학자 황상민 연세대 교수의 분석틀로 그날을 재구성해 봤다.

5월1일 노동절(목요일)과 5월5일(월요일)을 어떻게 이어볼까 궁리하던 직장인들에게는 5월2일의 처리가 골칫거리였지만 중고생들은 5월2일은 해방구의 시작이었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중고교들은 대부분 그날 중간고사를 마쳤다. 오전에 시험을 마치고 2일 오후부터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핸드폰에 정체 모를 문자메시지가 떴다. ‘5월2일 청계천에 오면 재미있는 일이 있어요’

황 교수는 문자메시지는 일부 유명가수 팬클럽 모임(인터넷 카페 등)에서 회원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5월2일 청계광장에는 1만5000여명이 모였고 그들 대부분은 중고생들이었다. '그냥' 또는 막연히 연예인의 공연을 기대했던 것.


재미있는 일처럼 모이는 것들이 청계광장 주변에는 과연 많았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주최측에서는 워터스크린을 비추는 영상쇼, 서울광장의 공연 등을 자랑했지만 중고생들을 사로잡은 것은 것은 정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자들이었다. 반대 논거 중 하나는 단체급식을 먹는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미국산 쇠고기를 피할 수 없다는 거였고 학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민영화로 수돗물 가격이 급등하고 교육자율화 조치로 더욱 시달릴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청계천에서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다음 아고라와 아프리카(유명 인터넷 방송 사이트) 등 에 다양한 의견과 영상들이 떠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여러 유행을 일으키는 이들(디지털 루덴스)의 작품이었다. 이들의 영상과 의견에 촛불소녀들은 열광했다. 디지털 루덴스에서 디지털 ‘부머’(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집단적 재미를 공유하는 이들)로의 이전이었다.

6일부터 광우병 관련 국민대책회의도 꾸려지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5월7일 서울시 교육감은 촛불집회 배후에는 전교조가 있다고 발언했고 교육청의 학생 참가 자제 권고도 있었다. 난데없는 해석에 촛불소녀들은 의아스러워졌다. 정부가 장관 고시 강행의지를 발표하자 어른들이 함께 나섰고 9일부터 집회는 전국 대도시로 확산됐다. 15일 정부가 장관 고시 연기를 밝히며 소강상태였다가 5월 하순부터는 사그라지는 불꽃같던 집회에 기름이 부어졌다. 정부는 29일 장관 고시를 강행했고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의 양초는 누구 돈으로 샀는지를 밝혀내라'고 지시했다. 경찰이 시위대에 처음 물대포를 쏜 날도 31일이다.

촛불소녀들의 관심은 점차 멀어졌지만 유모차 부대와 예비군 시위대, 하이힐 부대 등이 뒤를 이었다. 디지털 세상의 이슈는 아스팔트 위로 그대로 옮겨졌다. 뜨거운 6월은 그렇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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