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옆길에서 행복을 찾다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 2008.08.21 09:28

[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누구든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옆길로 샌 경험이 없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뚱이 혼기에 찬 질녀에게 한 이야기는 이후 한동안 내 삶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로 살 수 있게 했다. 어떤 남자를 결혼상대로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녀의 질문에 대장정을 이끌며 파란만장한 삶을 경험한 노 권력자는 말했다.

"애야, 그 젊은이가 말이다. 학창시절 남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동안, 혼자 빠져서 숲속 길이나 논두렁을 터벅터벅 걸어 본 남자라면 괜찮은 사람이다." 남다른 생각을 한 경험을 높이 산 것이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인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필자는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이 수업하는 동안 학교 국기게양대에서 태극기를 내리고 내 이름이 새겨진 신발주머니를 당당히 달아 올렸다. 교장실에서 한참 동안을 시달린 가엾은 우리 담임선생님은 "그동안 소소한 잘못을 포함해 모두 용서하겠으니 제발 조용히 지내자"면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휴전을 제의하셨다.
필자는 물론 근신했다. 하지만 어느 날 길모퉁이에 세워둔 리어카에 동네아이들을 태우고 내리막길을 가다가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돌진하여 용길이네 담장이 무너져 내리고, 아이들은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사라호 태풍에도 끄떡없던 시멘트 블럭 담장이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었다.

동사무소 옆 좁다란 골목에 숨어 있던 필자는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되어 학교 교무실로 이송되었다. 예상대로 나는 다시 퇴학 처분 통고를 받았다. 하지만 두번의 퇴학 처분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연유인지, 나는 무사히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 쥐었다. 초등과정이 의무교육이라 퇴학이 원래 불가능 한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내 옆길 행각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어느 날 매를 때리시던 어머니가 필자를 안고 울면서 분명히 내가 잘못한 짓을, 당신이 잘못하셨다고 하시면서 통곡하셨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당신의 눈물에 그간의 내 잘못에 대한 깨달음이 홀연히 머리를 스쳐 마음 깊숙이 자리했다. 늘 몸으로 때우던 숙제를 간간이나마 스스로 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대학시절부터 단짝인 중년의 두 남자-영어교사 겸 무명작가이며 와인애호가인 이혼남 마일즈와 별 볼일 없는 성우이자 여자 밝힘 증세가 심한 잭-는 결혼을 일주일 앞둔 잭의 총각파티를 위해 산타 바바라로 떠난다. 마일즈를 따라 와이너리로 시음여행을 다니며 각기 여자를 만나지만 두사람은 소심함과 뻔뻔함의 성격차이만큼 다른 과정을 겪는다. 마일즈는 이혼한 전 아내와의 재결합을 늘 꿈꾸고, 결혼 10주년을 위해 보르도 쌩때밀리옹의 초특급 와인인 슈발 블랑 (Cheval Blanc) 1961년산을 가지고 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별로 이룬 것 없이 평범하고 특별한 미래가 없어 보이는 40대 두 남자를 통해 이 시대의 그저 그런 중산층의 삶을, 와인을 매개로 짜임새 있게 풀어 2005년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와인을 마시며 자신들의 참모습을 찾자는 당초 취지는 잭의 여자문제로 점점 샛길로 빠져 여행은 엉망이 됐다. 마일즈는 출판사에 보낸 시나리오의 퇴짜통보를 받고난 후 잭의 결혼식장에서 그리던 전 부인과 새 남편을 만나 그녀의 임신소식을 듣는다. 크게 낙담한 마일즈의 이후 행동이 급반전이다.

돌아오던 길 들린 까페에서 그는 수백만원은 호가할 슈발 블랑 1961년산을 큰 종이컵에 잔뜩 따라서 햄버거와 함께 마신다. 슈발 블랑을 마시면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걸까. 집에서 마야로부터 온 위로 메세지를 보고, 그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영화의 끝이다.

마야는 문을 열었을까? 처음 만난 날 그녀가 말했다. “특별한 날에 슈발 블랑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슈발 블랑을 마시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필자는 우리가 때때로 들린 옆길들(Sideways)은 좀 돌아가긴 하겠지만, 언젠가 원래의 길로 다시 찾아들기 마련이라고 믿고 느긋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황재균과 이혼설' 지연, 결혼반지 뺐다…3개월 만에 유튜브 복귀
  2. 2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3. 3 1년 전 문 닫은 동물원서 사육사 시신 발견…옆엔 냄비와 옷이
  4. 4 우리 동네 공인중개사들은 벌써 느꼈다…"집값 4%대 하락"
  5. 5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