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장밋빛 속삭임, 낚이면 낭패본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8.08.11 08:30

[머니위크 기획]기획부동산, 컨설팅인가? 사기인가?

지난해 서초동에 사는 최선자(가명·59) 씨는 10년 지기 이웃 조선례(가명·62) 씨의 감언이설에 속아 15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봤다. 평창에 땅을 사면 수십배의 이익이 날 것이라는 말에 계약을 조씨에게 위임했다.

최씨는 삼성그룹이 평창에 땅을 사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2014년 동계올림픽의 유치에 확신이 있었다. 따라서 대출을 포함 남편의 퇴직금, 강남역의 오피스텔을 처분해 마련한 20억원을 고스란히 남편 몰래 평창의 토지에 투자한 것. 펜션 부지를 구입하면 막대한 이득이 생긴다는 조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최씨가 나름 투자에 안심한 이유는 조씨가 10년째 아래윗집 사이로 절친한 친분관계를 유지해 온데다 본인과 조씨를 포함해 5명의 단지 내 이웃들이 공동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씨는 조씨와 같은 교회에서 믿음을 쌓아온 터라 신용에 있어서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평창이 러시아의 소치시(市)에 밀리며 동계올림픽의 꿈을 또 한번 접어야 했던 순간, 최씨 역시 가격상승으로 막대한 차익금을 남기겠다는 꿈이 사라져 버렸다. 아쉬움에 잠길 무렵 최씨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자신이 3.3㎡당 75만원에 구입한 토지가 실제로는 2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원 소유주가 그렇게 믿고 믿었던 조씨였다는 사실이다. 조씨는 해당 토지를 3.3㎡당 20만원에 구입해 55만원의 차익을 거뒀다. 피해금액은 최씨를 포함 4명이 현 시세의 토지가격을 제외하고 73억원에 이르렀다.

최씨는 사기를 당하고 나서야 평창 현장에서 땅을 소개시켜주던 부동산 관계자들이 기획부동산업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씨는 호구를 물어오는 이른바 ‘연결책’이고 바람잡이 역할이나 계약 진행은 기획부동산업자가 주도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기획부동산 업자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조씨는 여전히 최씨의 아랫집에 살고 있다. 자신의 투자권유가 위법한 행동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씨를 비롯한 4명의 투자자는 조씨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승소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보편적 기획부동산의 수법

기획부동산은 건수나 호재가 있는 지방 토지를 조사해서 계약금 10% 정도를 주고 토지주인과 토지 위탁 매매 계약을 체결한다. 이를 적당한 크기로 분할하고 그런 토지를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시세보다 10배에서 많게는 200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판매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이른바 부동산 사기 회사이다.

그들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온 나라가 뛸 때 평창에 땅을 사라고 권유를 하고 신도시에 타운하우스 관련 토지를 매입하라는 등 듣기에는 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깜박 속게끔 사기를 친다. 때로는 정치가나 목사, 판사 등 유명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계약을 강요한다. 한 기획부동산의 온천개발 착공식에는 한국 정치사를 주름잡던 최다선 의원 중 한명과 성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교수 등이 참석해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기획부동산에서는 상담 받으러 사무실로 나온 투자자가 실제 투자까지 이르는 확률을 대략 70%로 잡고 있다. 투자자 하나를 두고 무차별 공세를 펼치는데다가 온통 고급 가구와 예쁜 프론트 직원을 배치해 중압감과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매물은 보여주지도 않고 가계약금부터 내라고 하면서 마치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간다. ‘각서를 써주겠다’, ‘6개월 후 매매까지 책임지고 해 주겠다’ 등 온갖 감언이설로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6개월 후 회사를 폐쇄하면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한다.

훗날 돌이켜 보면 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어색할 수 있으나 정말 여럿이서 한명 바보 만들기가 쉽듯이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부동산 개발, 계획대로 진행되나

기자가 찾아간 한 기획부동산 업체에서는 평창에 리조트사업이 한창이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정말 개발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평창군에 문의했다.

평창군 관계자는 “사업 초기단계라고 하기도 미흡한 일종의 민간 제안 수준”이라며 “지난 2007년 11월에 사업 구상안을 제출했으나 부족한 부분이 많아 조건부 승인을 내렸고 7월29일 현재까지 개선된 사업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다.

조건부 승인은 평창군이 강원도에 심의를 받기위해 제출하는 최소한의 자격요건으로 평창군이 승인을 했다 하더라도 전체 인허가 절차까지 이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평창군 관계자는 “사업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는 회사라면 통상 3개월 내에 개선 사업안을 들고 찾아오게 마련이지만 이 회사는 8개월이 넘었는데도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업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부동산의 덫에 빠진 대부분의 투자자는 해당 개발사업이 접수됐는지 여부만 확인하기 때문에 실제로 인허가 절차까지 많은 난관이 남아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기획부동산의 수법을 잘 알고 있다는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자체 관계자가 개발사업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투자자들은 사업의 진행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획부동산 업체가 기자에게 판매하려 했던 3.3㎡당 15만원의 판매대금은 인근 중개업소에 문의한 결과 불과 1만~2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해당 토지가 대부분 농림지역이고 일부가 관리지역에 포함되는데 시세는 각각 1만~2만원, 2만~3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증언했다.

◆화려한 계약서, 자세히 들어보면

기자가 찾은 국내 최대 기획부동산에서 제시한 각종 서류를 부동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분석한 결과 대부분 효력이 없는 제안서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컨설턴트가 비공개를 고집하다가 내놓은 부동산개발사업계약서에는 투자자가 계약하는 토지가 정확히 명시돼있지 않았다. 투자자의 이행여부는 세부적이고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내용인 반면 이 컨설팅회사가 이행해야 할 부분은 대부분 ‘성실히 수행한다’ 식의 두루뭉실한 내용뿐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기획부동산의 계약서는 대부분 한자를 많이 사용하면서 위압감을 주는 한편 사업이 어긋나더라도 ‘성실하게 추진했으나 인ㆍ허가가 나지 않았다’ 등의 빠져나갈 구멍을 많들어 놓는다”면서 “이 계약서는 한눈에 봐도 투자자가 매우 불리한 백지위임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이 컨설팅회사가 내놓은 은행권 PF계약이나 시공사 선정 계약 등은 모두 의향서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사가 한 시중은행과 가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계약서는 사실상 사업제안에 따른 회신 수준으로 ‘수십가지의 여건을 갖추면 참여를 고려해 보겠다’는 형식적 회신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의향서 역시 6개월의 유효기간이 지나 효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컨설팅 회사가 강릉의 한 관광지 내 워터파크 신축공사 증거자료로 내놓은 기술용역도급계약서 역시 첫 계약금이 무려 5억2000만원이나 됐다. 통상 계약금은 전체 도급금액의 1/10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제 설계에 들어가는 금액만 52억원이 드는 매머드급 사업이라는 이야기인데 이 같은 대형사업에 정작 중요한 도급내용은 ‘계약서 참조’라고만 명기하고 실제 계약서는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이 회사의 사업에 진실성이 없다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의 증언이다.

◆올바른 컨설팅 회사

올바른 컨설팅 회사는 토지보다는 주택 쪽에 포커스를 맞춘다. 토지는 10년 이상 가지고 있을 정도의 장기 상품이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때문에 올바른 컨설팅은 토지 보다는 현재 갖고 있는 주택이나 오피스텔 등 수익이 바로 창출될 수 있고 안전한 투자 위주의 컨설팅을 한다.

또 사무실 직원도 기획 부동산처럼 많지 않고 3~4명 정도인 곳이 많다. 텔레마케팅처럼 많은 사람들이 무작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직원이 많을 필요가 없다.

고객 상담 시 한군데를 데려가기 보다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고객이 선택하게 만드는 것도 기획 부동산과 다른 점이다. 비록 상당히 전망이 있고 가격이 오를 것이라 예상을 하더라도 고객에게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말하는 게 올바른 컨설턴트의 몫이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수익률 얼마 보장'같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 대해서 고객과 충분히 상의를 하는 컨설턴트가 올바른 컨설턴트"라며 투자자의 올바른 판단을 주문했다.


21세기컨설팅 기사관련 정정 및 반론 보도

8월12일자(제41호) 피처면 <달콤한 '고수익ㆍ수십배'의 치명적 유혹 난무>, <뜬금없는 장밋빛 속삭임, 낚이면 낭패본다> 제하의 기사에서 강원도 평창군과 강릉에서 리조트 개발공사와 워터파크 신축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21세기컨설팅주식회사를 고수익으로 투자자를 유혹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기획부동산업체라고 묘사하면서 1. 평창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업체는 사업의지가 없고, 2. 부동산개발사업계약서에 투자자가 계약하는 토지가 정확히 명시돼 있지 않으며, 3. 워터파크 신축공사 증거자료로 내놓은 기술용역도급계약서의 첫 계약금이 무려 5억2000만원이고 실제 설계에 들어가는 금액만 52억원임에도 실제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아 사업의 진실성이 없어 보이고, 4. 확정금리나 원금보장 등을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은 유사수신행위를 저지르는 위법 행위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기사에 언급된 부동산개발사업계약서는 토지에 대한 매도인, 매수인이 결정되지 않은 일반 계약서 양식에 불과하여 계약하는 토지가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이고, 실제 설계 금액이 52억원이 아니라 5억2000만원이며, 기술용역도급계약서를 공개하고 있고, 이 업체의 영업행위가 유사수신행위가 아님이 밝혀져 이를 바로 잡습니다.

또한 21세기컨설팅주식회사는 리조트 개발사업을 위해 평창군과 협의하여 2008년 5월에 강원도청에서 사전심의를 받고 8월에 조건부 수용 상세 제안서를 첨부하여 협의요청 하였으며, 국토해양부에 정식 등록된 부동산 개발업체로서 간접투자 방식에 의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토지를 분할하여 판매하는 기획부동산과는 무관하다고 밝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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