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UCC 미국을 뒤흔들다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 2008.08.04 12:21

[인터뷰]재미교포 2세 사회운동가 박소현씨

2008년 7월 9일 뉴욕타임즈에는 '독도'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1년 전 워싱턴포스트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알리는 광고가 게재됐던 것.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 광고 뒤에는 워싱턴 위안부 범대위 간사를 맡았던 애너벨 박(박소현·40)의 노력이 있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제11회 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대해 묻자 "나이와 국적을 초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이 매우 감동이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이민자들, 미국인들도 참여해 기금을 모았습니다. 70~80세의 할머니들도 영어를 못해도 일일이 번역을 해가면서 열정적으로 일을 하셨어요."

쇠약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들에게서 놀라운 힘을 얻은 그는 적극적으로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모금활동을 벌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게재된 광고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일본 아베 총리가 위싱턴에 방문했을 때 이 광고를 보여줬는데 아마 굉장히 뼈아팠을거에요. 그때 우리가 해낸 일들이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만약 광고를 안냈다면 일본은 아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안했겠죠."

이때부터 자신이 만든 동영상의 엄청난 힘을 깨달은 그는 현재 미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캠프에서 인터넷 홍보 동영상 제작팀장을 자원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재미교포 2세 사회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78년 9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해 보스턴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끊임없이 사회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인종차별이 심한 텍사스에서 저 혼자만 아시아인이었어요. 그곳에서 적응하고 동화하기 위해서 성장통을 겪었죠. 나는 누구인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하는 고민들과 항상 싸웠습니다. 정치학은 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무대였어요."

졸업 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했던 그는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국을 오가며 수요집회와 캠페인에 참석해온 그가 한국의 촛불집회문화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촛불집회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을 보여주는 것 인만큼 국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민주주의적인 방법이죠."

앞으로도 사회운동가로 남고 싶다는 그의 꿈은 지금처럼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을 통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소통을 돕는 메신저가 되고 싶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들 속에서 서로 협동하고 같이 잘살기 위한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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