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헤게모니 쇠락 '포스트 아메리카'

뉴욕=김준형 특파원 | 2008.07.31 12:40

[벼랑끝 미국-3]신용위기 이후 세계경제 재편

2008년 여름 휴가철을 맞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는 유럽 관광객이 넘쳐난다.
호텔 예약 사이트 퀵북닷컴의 브라이언 핸드릭스 부사장은 "달러화가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유럽지역 관광객이 지난해에 비해 25%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인들은 물한병에 3-4달러씩 하는 유럽에 갈 엄두를 잘 내지 못한다.

화폐는 국력이다.
축소되는 달러의 위상은 곧 쇠락하는 미국의 영향력으로 연결된다.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 어젠다(DDA) 협상이 미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의 의견대립으로 결렬됐다.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저먼 마샬 펀드의 무역 전문가 조 귀난은 "우리는 새로운 파워 축의 부상을 목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 헤게모니에 기반한 부채국가 미국의 쇠락현상은 보통 미국인들의 삶에도 이미 깊숙히 투영되고 있다.

다이앤 맥러드씨(여. 47)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두개의 직장에서 연봉 5만달러를 버는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이혼후 2003년 모기지 대출로 13만5000달러짜리 집을 샀다. 집값이 오르면서 추가 모기지를 받고, 카드로 쇼핑을 즐기다 보니 모기지 빚은 23만7000달러로 늘었다.
주택경기하강으로 집값이 15만달러수준으로 떨어지고 설상가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겨 직장 한곳을 잃었다. 맥러드씨는 이제 카드빚과 모기지, 각종 대출관련 수수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집은 차압 직전이고 맥러드씨는 파산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20일자 뉴욕타임스)

◇ 버는것보다 많이 써 온 미국

미국 소비자들의 부채는 6월말 현재 2조5600억달러에 달한다.
개인들뿐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번영 자체가 '버는 것보다 많이 쓰는' 구조아래 형성돼 왔다.
달러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 외환보유고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교역의 5분의4가 달러로 결제되고 수출된다.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물건을 팔고 필요한 달러를 조달해야 한다. 반면 달러를 얼마든지 찍어낼수 있고 외국화폐가 절실하지 않는 미국은 점점 더 적은 상품과 서비스를 해외시장에 팔아 왔다. 결국 미국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고, 다른 국가들은 쓰느 것보다 더 많이 버는 과정이 누적돼 왔다.

한편으로는 이라크 전쟁처럼 유일강국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달러가 소진돼 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직간접비용을 포함 이라크전 비용이 3조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부채의 3분의1을 갚을 수 있는 돈이다.
↑미 주택가격 추이(케이스-실러 지수)-자료:IMF

◇거품 붕괴, 세계 파급..프라임부실 확산 눈앞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에 달하는 부채경제가 언제까지 지탱될수는 없는 법.
주택버블 붕괴로 인한 경기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5.25%이던 기준 금리를 2%까지 내리는 과정에서 시장의 자금은 원유를 비롯한 금속 곡물 등 실물자산으로 급속히 빠져나갔다. 상품의 대체자산인 달러화가치는 더욱 하락, 미국인들이 살수 있는 물건은 갈수록 줄었다.
유가는 올들어서 한때 배럴당 147달러까지 올랐고 달러/유로 환율은 올들어 한때 1.60달러를 돌파했다.

한편에서는 투자가 줄어들면서 경제활동 자체가 축소되면서 다시 달러가치 하락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은행 대출과 기업어음의 총액은 지난해 말 현재 3조 2700억달러로 전년대비 3% 줄었다. 2001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달러가치 하락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한국과 같은 공업생산국의 교역조건을 악화시키고 자원보유국가들로 부를 집중시킨다. 공업국들의 경기는 더욱 둔화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의 양대 국책 모기지 회사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유동성위기에서 보듯 미국의 위기는 서브프라임에서 '프라임'으로 전이되고 있다. 두 회사의 채무는 5조달러로 지난해 미국 GDP의 36%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부분을 외국 투자자들이 떠안고 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JP모간도 2분기중 470억달러의 프라임 모기지 자산가운데 1억4000만달러어치가 부실화됐다.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프라임 모기지의 채무불이행비율이 세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력이 높은 우량 독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아멕스카드의 2분기 순이익이 38% 급감한 것도 '프라임 부실'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달러/유로 환율 추이(자료:야후 파이낸스)

◇ 발언권 높아지는 신 파워

중국이나 중동국들은 이전처럼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서 쌓아두는 대신 신용경색의 희생물들을 주워담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외국기업들은 이제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매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아메리카의 의사결정에 직접 간여하게 된다는 말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들어 사우디를 제 집처럼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시원한 증산 약속 하나 얻어내지 못한다.
중국은 풍부한 달러를 이용해 아프리카 등 개도국에 IMF를 대체하는 지원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영향력도 그만큼 급등하고 있다. 이미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말 현재 10.8%에 달한다. 브라질과 인도를 합친 브릭스로는 21.4%이다.

◇ 통상적 정책 대응 한계..'슬로우 모션 R'

IMF는 30일 발표한 미국 보고서에서 미국의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더 힘들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연준으로선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자니 경기를 아예 죽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린다면 달러의 약세는 굳어진다. 이 경우 달러 표시 자산가치의 추가하락을 못참을 신흥 파워 국가들이 달러 대신 유로를 기축통화로 삼을 움직임을 더욱 구체화하면서 달러 헤게모니의 종말에 기름을 끼얹을 수도 있다.

전쟁을 통한 강제적 탈출구를 배제한다면 미국의 선택은 자명하다.
미 재무부 출신의 경제 컨설턴트이자 저술가인 리처드 쿡은 글로벌 리서치 기고에서 "달러찍는 공장으로서의 연준의 역할을 포기하고 금융시스템을 진정한 공공 유틸리티로 만드는 개혁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제조업과 공공인프라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의 '근본적인 개혁'이 어떤 내용이 돼야 할지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땜질식 처방과 세금투입, 이로 인한 재정적자, 달러약세의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슬로우 모션 침체(Slow Motion Recession)'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는 천천히 '포스트 아메리카'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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