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거래세, 투기 잡으려다 시장 망친다"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강미선 기자, 박성희 기자 | 2008.07.24 14:55

탁상공론식 발상에 선·현물시장 동시 왜곡 우려

정부에서 파생상품에 대해 거래세를 부과할 방침인 가운데 시장에서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에선 세원 확충, 투기거래 억제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증권업계에선 "파생상품 시장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거래세가 도입되면 시장에 여러 폐해를 낳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선물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현·선물가격의 차이(갭)을 메워주는 가격균형 역할이 약해질 전망이다. 현물가격 형성에도 왜곡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거래세 부과로 파생상품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 애초 세수 확보라는 성과도 기대에 못미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 현실과 기능을 무시한 '탁상공론식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정부에선 거래세 부과 이유 중 하나로 파생상품 시장이 활성화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지수선물과 지수옵션을 제외하고 활성화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래세를 부과하면 차익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차익거래펀드들 특히 공모형 펀드들이 한국 시장을 대거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최 책임연구원은 또 "선물거래는 하루 평균 30만계약이고 선물 1계약은 1억원이 넘는 규모"라며 "파생상품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 형태로 이뤄지는데, 거래세를 부과하면 메이저 투자세력이 떠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경하 대우증권 주식워런트증권(ELW) 운용부장은 "파생상품에 새롭게 과세한다는 건 시대 역행적인 조치"라며 "투기거래를 진정시키려다 시장 자체를 죽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부장은 "세계에서 유가증권 거래세처럼 파생상품 거래 자체에 과세하는 곳은 대만이 유일하다"며 "이미 대만이 후유증을 겪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대만이 과세를 시작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대만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했고, 이에 타격을 입은 대만은 다시 적극적으로 거래세를 인하했다.

그는 이어 "파생상품 거래세가 부과되면 증권사들은 비용 부담을 고객에게 바로 전가하게 돼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며 "현재 리스크 헤지 주요 수단이 파생상품이어서 펀드 운용 수수료 등 모든 상품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국내 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도 "펀드가 파생상품 투자를 통해 기대하는 이득 수준은 큰 게 아닌데 여 기에 세금까지 부과되면 차익거래하는 입장에선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확한 세율에 따라 운용전략을 변경하겠지만 차익거래 갭을 키우기 위해 운용과정이 복잡해 지고 비용이 늘어나는 건 분명하다"며 "이렇게 되면 파생상품 투자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회전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는 선물 옵션에 대한 과세만 고려되고 있지만 ELW 시장까지 파급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외국계 증권사 한 관계자는 "이제껏 국내 파생상품 시장이 성장하고 외국사가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도 거래세가 없던 영향이 컸다"며 "당장 거래세가 부과된다면 거래가 줄면서 투자자들이 유동성이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거래를 기피하면서 주식옵션처럼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홍콩은 오히려 유동성공급자(LP)의 시장 조성을 위해 주식 매매시 거래세를 면제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며 "게다가 파생상품에 거래세까지 부과하면 LP들마저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 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의 거래 비용을 증가시켜 파생상품 시장이 위축되면 현물시장 헤지가 힘들어 그 부정적 영향이 현물시장 위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코스피200선물·옵션은 규모면에서는 크지만 그 외에 KTB선물, 미국달러선물, 개별주식선물 등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더 접근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선물·옵션시장의 일평균거래량은 1135만계약으로 전년 대비 13.3% 증가했고, 일평균 거래대금은 29조5644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코스피200선물·옵션의 일평균거래량이 1127만 계약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주현 현대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서 옵션1위, 선물 4~5위로 양적인 면에서는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질적인 측면과 성숙도면에서는 여전히 많이 뒤쳐져있다"며 "최근 새로 도입되는 상품들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이전에 거래세가 도입된다면 투자자들의 외면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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