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前의원 "정몽준의원, 섭섭해말아요"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08.07.21 07:35

오늘 미국행…하버드대에서 '리더십' 연구

19세기 프랑스 법률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1755~1826).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로 유명하다.

이미 '먹은 것'은 '과거'다. 사바랭의 명언은 "과거를 알면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과거…CEO출신 정치인은 뻔하다?

1976년 현대중공업 입사, 현대자동차 사장(CEO), 현대캐피탈 회장….

이계안 전 의원의 과거다. 그가 17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았을 때 많은 이들은 재벌 계열사 CEO로 승승장구했던 과거에서 '친기업' 의정활동을 점쳤다. 하지만 그는 현대판 '사바랭'들의 허를 찔렀다.

그는 '낮은 곳'과 '패자부활'에 애정을 가졌다. 이(利)의 삶이 아니라 의(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친의 가르침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관심은 장애인보호, 서민금융지원, 여성 지위 향상, 순환출자 해소 등에 관한 입법 성과로 나타났다. 물론 아쉬운 게 많다.

"많이 못했죠, 한두 가지 했고 몇 가지 숙제를 안고 끝냈습니다."

'현대맨 출신'이란 수식어는 정치인생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얄궂은 운명도 만들어냈다. 서울 동작이 지역구인 그는 "국회의원 한 번만 하겠다"는 처음 약속대로 18대 총선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이 곳에 출마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지원했다.

이때 정 후보의 맞수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다. 자신을 인정하고 끌어줬던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자 서울대 상대 동창인 정몽준 후보와 경쟁해야 했다. 이 전 의원은 곤란해졌다.

"개인적 인연으로 하면 정동영 후보는 4년이지만 정몽준 후보는 40여년 가까이 됐어요. 굉장히 곤란했죠. 그런데 정치인으로서 (당이 다른) 정몽준 후보 편을 드는 것은 어려웠어요. 정몽준 의원이 지금도 섭섭해 합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구요.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현재…"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시중에 이명박 대통령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대통령과 현대에서 인연을 맺은 그에게도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그는 대통령이 모든 일을 해낼 듯이 보이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쓴소리다. "사기업처럼 운영하기엔 국가는 너무 복잡다기하다"는 얘기다.


"현대에서는 정주영 회장하고만 소통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 회장 자리에 국민 전체가 있는 거죠. 단지 안 보일 뿐입니다. 그런 관계를 대통령께서 다시 보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신뢰를 회복하느냐, 통렬한 반성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죠."

그가 없는 민주당은 야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지지율에서 죽을 쑤고 있어도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가 CEO 시절 일화를 꺼냈다.

"현대차가 느닷없이 파업하면 경쟁사 대리점장들이 좋아했답니다. 드디어 우리 차가 팔릴 거라구요. 그런데 (기대만큼) 안 팔렸대요. 스스로 경쟁력 있는 차를 만들기 전에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민주당도 지금 2010년 지방선거를 다 이긴 것처럼 생각해선 안돼요"

◇미래…"못하겠다는 소리 안할 겁니다"

이 전 의원은 오늘(21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초빙연구원으로 1년을 보낸다.

연구의 화두는 리더십이다. 그는 사회의 3가지 축으로 정부, 시민사회, 시장을 꼽는다. 각각의 영역에 통하는 리더십이 다른데 이걸 하나로 꿰뚫는 리더십이 있는지 연구하고 싶다. 키워드는 혁신, 통합, 포용이다.

리더십 공부는 곧 정치에 대한 연구다. 그런 만큼 이 전 의원의 시선은 2년 뒤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을 법하다.

서울시장은 그에게 오래된 화두 중 하나다. 2006년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당시 강금실 후보에게 패해 꿈을 접었다. 하지만 경선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명쾌한 논리와 참신한 공약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계안'이란 이름을 각인시켰다.

서울은 오는 2010년 새 시장을 뽑는다. 아직도 그는 꿈을 꾸고 있을까.

"사람 일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어떤 상황이 됐는데 '내가 갖춰야 할 소양이 준비가 안돼 못하겠습니다' 하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21일 '떠나는 글'을 띄웠다.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세계최고의 교육도시라는 보스톤과 경제도시 뉴욕을 경험하며 공부한 지식이 소중히 쓰일 수 있기를 감히 바래본다"고 썼다.

'과거'만으로 '현재'를 점칠 수 없었던 정치인 이계안. 1년 뒤 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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