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시대 열 승부사' 메가뱅크 물꼬 튼다

김익태 기자 | 2008.07.18 08:30

[머니위크]KB금융지주 황영기 회장

지난 7월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오는 9월 출범하는 KB금융지주의 초대 회장을 뽑는 회장추천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은 회장 후보 4명에 대한 심층 면접이 이뤄진 날.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오전 9시30분쯤 첫 면접을 치뤘고,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오후 2시쯤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저녁 11시쯤 회추위를 구성하고 있는 9명의 사외이사들의 얼굴에는 피로감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면접이 하루 종일 이어졌을 뿐 아니라 예상을 깬 결과가 나온 탓이다. 지난해 3월 금융계를 떠난 황 회장이 15개월 만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 황 회장의 화려한 부활

강 행장은 현직 은행장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강 행장은 당초 9명의 사외이사 중 과반이 넘는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한 분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강 행장 대신 새 정부 출범이후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장 등 주요 금융기관장 후보로 거명됐던 황 회장의 손을 들어 줬다. 강 행장이 뒤늦게 등장한 황 회장의 '일격'에 패배를 당한 것이다.

뒤늦게 출사표를 던진 황 회장의 추격은 '검투사'라는 그의 별명처럼 매서웠다. 당초 7대 2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 행장 쪽으로 기울었던 판세는 황 회장이 가세하면서 뒤바뀌기 시작했고 면접 당일에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백중세로 돌아섰다.

강 행장은 1차 서류심사에서 우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최종면접에서 역전을 당했다. 승부는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경영계획 발표'에서 갈렸다. 면접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황 회장은 해외진출을 통한 대내외 성장 비전과 비은행 사업 다각화 방안 등에서 설득력 있게 사외이사들에게 접근했다. 회추위는 결국 지주회사 전환 후 비은행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증권ㆍ보험 등을 두루 경험한 황 전 회장의 경험을 높게 평가, 만장일치로 그를 초대 회장으로 선택했다.

한 사외이사는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던 강 행장의 경영 방침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는 사외이사들이 대부분 공감을 하는 분위기였다"면서도 "황 회장이 핵심사항을 정확하게 끄집어내는 프리젠테이션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 강 행장은 은행장으로서 남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 행장은 작년 10월에 연임해 임기가 2년 넘게 남아 있다. 공격 경영과 보수 경영이라는 전혀 다른 경영 스타일에 따른 불화 가능성을 염두한 듯 강 행장은 "자전거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두발 자전거 이론'을 내세우며 황 회장과의 화합을 다짐했다.

황 회장 역시 강 행장과의 사이를 "수십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호흡을 맞춰온 투수와 포수"라고 비유하며 "역할분담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금융권 M&A 빅플레이어 경연장 될 듯

황 회장 내정자의 등장으로 금융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형화가 금융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투사'로 불리는 황 내정자가 전략적인 인수ㆍ합병(M&A) 구상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올 들어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은 M&A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내 은행 인수의지를 밝혔다. 이를 통해 300조원대 자산을 500조원까지 키워 글로벌 30위권에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국민은행도 지주회사 전환을 계기로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이미 국민은행은 론스타와 HSBC의 매각계약이 파기되면 외환은행 인수에 즉시 뛰어들 태세였다. 여기에 황 전회장이 가세하면서 전력은 한층 강화됐다.

최근 법인세 '폭탄'을 제거한 하나금융 역시 '빅3'로 도약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금융기관 인수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비은행권의 교차판매 채널 확대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산은 민영화 우선론'에 밀렸던 '메가뱅크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하나로 묶자는 것이다. 외형 확대 전쟁에서 패배하는 곳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물밑에서 치열한 합종연횡이 펼쳐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회장이나 황 회장 모두 메가뱅크론에 우호적이다. 메가뱅크 전도사인 박병원 전 우리금융 회장이 청와대 경제수석에 기용돼 정부에서 이를 주창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지도 상대적으로 넓어졌다. 전광우 금융위원장 역시 "산은 민영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M&A를 완전 배제하지는 않겠다"고 언급해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단 국내에 대형 '매물'이 한정돼 있고, 라응찬, 김승유, 황영기, 이팔성 회장 등이 모두 강한 개성을 갖고 있어 '빅플레이어'들의 신경전으로 끝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계 관계자는 "독자적인 M&A가 쉽지 않은 만큼 정부의 측면 지원을 받아 이를 밀어붙일 수 있다"면서도 "이른바 실력자들이 주요 금융회사 CEO를 맡는 바람에 오히려 매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은행중심 수익구조 개선 등 역량 보여줘야

당장 국민은행 주가가 지주사 전환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 청구 가격인 6만3293원을 크게 밑돌고 있다. 지난 10일 종가는 5만7800원. 이 가격대가 오는 8월25일 주주총회까지 유지되면 지주사 전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국민은행은 9월말 지주사 출범을 목표로 기존 주주와 지주사 간 1대 1 비율로 주식을 교환할 예정이다. 주식이전에 반대하는 주주는 주총 이전에 서면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 주총 이후 주식매수 청구기간에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주식매수 청구가격이 주가보다 높아 주주들이 주식매수 청구권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행의 지주사 전환 의지가 강해 실패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주가가 일정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주식 매수에 따른 자금 출혈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로 인해 계획하고 있는 M&A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국민은행은 일단 적극적인 부양책을 통해 주가를 매수청구가격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와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공동으로 국내외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을 개최할 계획이다.

KB금융지주는 우리금융그룹에 이어 국내 2위의 금융기관이 될 전망이지만 99%에 달하는 은행 중심의 수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증권ㆍ보험 등의 비은행 분야가 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다. 황 내정자는 바로 비은행 분야를 강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은행권 안팎에서 황 회장 내정자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도 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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