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이건희 회장과 삼성 파브TV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08.07.10 18:07
10일 오후 1시 3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전 전략기획실장), 김인주 삼성전자 상담역(전 전략기획실 차장)이 결심공판을 기다리며 피고인석에 앉았다.

그 맞은 편 특검 측 좌석의 옆에 한 대의 PDP TV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삼성 파브 TV였다. 이 TV는 재판부가 증거 설명을 듣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50인치 TV 아래에는 'PAVV'라는 삼성전자 TV의 브랜드 표시가 선명했다.

방청객으로 가득찬 법정 내 좌석 세번째 줄부터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 고문 등 20여명의 삼성 경영진들이 자리해 특검과 변호인 측의 공방을 지켜봤다. 삼성에버랜드의 CB와 삼성SDS BW의 발행 과정에서 배임이었느냐 아니냐를 놓고 치열한 마지막 변론이 이어졌다.

변호인 측은 삼성이 차명계좌 내 주식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챙기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50인치 삼성 파브 PDP TV로 삼성전자의 과거 주가 그래프를 프리젠테이션했다. 이 회장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 회장은 그 TV 화면을 보며 앞에 놓인 물잔으로 물을 마시곤 했다. 물잔을 내려놓는 손이 흔들리곤 했다. 그 파브 TV를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최후 변론 과정에서 변호인은 "이 자리가 공과 가운데 과를 따지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이 전 회장이 국가에 기여한 공로도 인정해달라"면서 1990년대초 LA의 한 백화점에서 먼지에 쌓인 브라운관 TV를 보며 직원들을 질책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28조 5000억원의 세금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 먼지 쌓인 브라운관 TV가 이제는 세계로 뻗어가는 LCD TV와 PDP TV로 변했고, 그 PDP TV 가운데 한 대가 공교롭게도 이 회장의 재판장에 서 있었다. 이 회장은 이런 상황이 기막힌 듯 변호인 설명 중에 TV를 바라보며 입안에 공기를 가득 물고 볼이 불룩할 정도로 부풀렸다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피고인 최후 변론에서 "앞만 보고 멀리 보고 해외기업과 경쟁하는 데 신경을 쓰다보니 제 주변 일에 소홀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제 불찰이다"며 "경위야 어떻든 국민들께 송구하고 임직원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고 아래 사람들을 선처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학수 고문과 김인주 상담역은 최후 진술에서 "이번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며 이 회장에 대한 선처를 당부했다.

특히 이학수 고문은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너무 안좋다"며, "몇년 전 폐암 수술이 잘 되긴 했지만 최근 수개월에 걸친 수사, 삼성 쇄신안 마련 등에 피곤이 축적됐고 노령에 따른 건강악화를 감안, 선처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때 방청석에 있던 20여명의 삼성 사장단 중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등 일부 사장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2시간 반 가량의 결심 공판이 끝난 후 재판부와 특검 측이 퇴정 한 후에도 이 전 회장은 이학수 고문, 김인주 상담역 등에 둘려 쌓인 채 잠시 법정 내 의자에 앉았다.

10분 정도의 휴식을 끝내고 방청객이 모두 떠난 후 이 전 회장은 이완수 변호사의 부축을 받으면 법정 문을 나서 바로 옆 엘리베이터로 가는 도중 낮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비틀거리기도 했다.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흔들리는 이 전 회장의 모습은 20년간 삼성을 이끌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강력한 리더십의 총수라고 하기엔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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