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名匠]"요리는 내 인생" 신라호텔 요리명장

머니투데이 박희진 기자 | 2008.07.28 09:18

④'요리의 명장, 후덕죽 상무..중식당 '팔선'의 일등공신

주방 청소로 시작해 국내 최초로 요리사 임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요리의 중원'을 평정한 신라호텔 후덕죽 상무(59, 사진)는 요리계의 대표적 명장으로 꼽힌다.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을 세계적 레스토랑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세계적인 스타 마이클 잭슨 등 외국 명사들 사이에도 잘 알려진 정통 중화요리의 '최고봉'이다.

◇누님, 형님 도시락을 싸주던 아이=화교들이 많이 모여 살던 서울 서소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상무는 음식점을 하는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음식점을 하는 부모님 덕에 어릴 적부터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자랐죠. 먹는 걸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식탐'이 남달랐던 아이는 남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게 큰 기쁨이었다.

"요리에 취미가 있었어요. 5,6학년 때 새벽같이 일어나 누님, 형님 도시락을 만들어주곤 했었요"

그저 먹는 게 좋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좋아 요리의 길로 들어섰다. 1968년 서울 회현동 UN센터호텔에 취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던 UN센터호텔의 양식 음식점에 들어가게 됐어요. 40년전이죠.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식을 하던 곳인데 이곳에 가면 고기도 실컷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웃음)

◇3년의 허드렛일..떨리던 첫경험=그러나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3년간 주방생활을 하며 매일같이 청소와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아야했다. 그러다 처음 식빵을 만드는 기회를 얻게 됐을 때 더 없이 기뻤다.

"3년 만에 식빵을 만들게 됐어요. 반죽을 하고 빵을 굽고. 내 손에 놓인 식빵을 보니 말로 못할 정도의 감동을 느꼈어요. 아, 내가 정말 기술자가 됐구나하며. 내가 조리사구나. 정말 가슴이 벅찼어요."

함박스테이크, 비프스테이크 등 양식 요리도 척척 만들어냈다. 욕심이 생겨 제대로 요리를 배워보자는 생각이 꿈틀댔다.

"반도호텔에 중국 사천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용궁이라는 중식당이 있었어요.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갔어요. 일만 시켜달라고 하소연했죠. 매번 그냥 돌아와야 했어요. 네 번째 찾아갔을 때 입사를 시켜주더라구요. "

그때부터 또 다시 주방 허드렛일 생활이 시작됐다.

"밑에서부터 배웠어요. 신뢰를 얻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키기 전에 항상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매 맞는 일도 부지기수.."그래도 요리는 나의 운명"=사부의 혹독한 훈계가 일상인 주방은 흡사 중국 무술영화같은 공간이다. 서러움의 나날은 요리사의 숙명.

"국자로 맞은 게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주방장 앞치마 빠는 일도 제몫이었죠. 몰래 요리를 만들어보다 들키면 혼쭐이 났어요."

요리사의 길은 인고의 나날이었다. 도제식의 교육 현장은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시집살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척척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내던 주방장은 동경 그 자체였다.

"주방장은 '컴퓨터'였어요. 요즘 시대야 '레서피'가 있지만 그때는 주방장 머리속에 모든 요리법이 들어있었어요. 귀동냥, 눈동냥으로 하나씩 배웠죠. "

행여 놓칠 새라 메모, 정리하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겼다.

"그 밑에서 그렇게 일하고 나니 저도 컴퓨터가 됐어요(웃음). 1960년대. 제 나이 20대였죠. 그렇게 4~5년 근무하다 반도호텔이 롯데호텔에 인수되면서 그만두게 됐어요."

그때 그간 못했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행을 결심했다.

"누님이 일본에 계셨어요. 일본에 있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잠깐 식당에서 일했는데 글쎄 또 다시 요리에 빠져버리게 됐어요. 광둥요리를 하는 곳이었는데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또 든 게죠."

공부는 접고 그 식당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된다.

3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마침 개관을 준비하던 신라호텔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일본 오쿠라 호텔이 신라호텔과 기술 제휴를 맺고 있었는데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면접에 큰 도움이 돼서 신라호텔에 입사하게 됐어요. 입사후엔 6~7개월 일본에 가서 연수도 받았죠."

79년 신라호텔이 본격 개관했고 중식당 '팔선'도 첫선을 보인다. 신라호텔, 팔선과의 31년간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호된 신고식..불도장=중국에서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통하는 요리가 불도장이다. 전복 및 바닷가재 요리, 돼지 발굽의 힘줄 등 20가지 재료를 넣고 세 시간 동안 찐 중국 요리. 그 냄새에 이끌려 수도중이던 스님이 절의 담을 뛰어넘었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불도장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 바로 후 상무다.

"1987년에 '팔선'에서 불도장을 선보였어요. 무슨 요리인지 다들 모르니까 설명을 해야 했고 수도승과 얽힌 유래를 언급했고 신문광고에 광고를 냈어요."


그런데 이 광고가 뜻하지 않게 불교계를 자극했다. 불교를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

"조계종에서 항의가 오고 그때는 정말 겁이 났죠.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식으로 사과하고 불교신문에도 공식 사과광고를 냈어요."

그는 불도장 때문에 예상치 못한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했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 이 일을 계기로 불도장은 입소문을 타면서 일반에 알려졌고 후 상무도 불도장과 함께 유명세를 탔다.

불도장의 성공 비결은 중국 요리와 한국 입맛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요리는 끝이 없어요. 지속적으로 배워가야 해요. 쉴 새 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유럽 6개국과 상하이도 다녀왔다.

"동양은 물론, 서양 요리도 응용 대상이 됩니다. 세상은 동서양으로 나눠져 있지만 음식은 '퓨전'으로 동서양 구분이 사라지고 있어요. 요리에도 글로벌 감각이 필요합니다. 요리도 패션입니다. 시각적, 미각적, 감각이 한데 어우러져야 해요."

◇백화점 가면 식품 매장 가는 남자.."요리요? 인생이죠"="일이 즐거워요. 30년 동안 같은 한 곳에서 같은 일을 했는데 일이 따분했으면 못했을 겁니다. 일이 주는 즐거움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

그는 31년째 신라호텔 '팔선'을 지키고 있다. 매일 아침 6시면 눈을 뜬다.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한다. 몸 관리는 하루 30분 정도 헬스를 하는 게 전부다. 일이 주는 매일의 즐거움이 건강비결이란다.

요즘 그는 손자 보는 맛에 푹 빠졌다. 혈육을 뛰어넘는 후진양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는 팔선에서 35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중 20년 이상 한솥밥을 먹은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주방 식구들이 제일 큰 재산이지요. 언제나 고마워요. 아버지는 날 낳아줬고 사부는 날 키웠다고 말을 해요. 때로는 혈육의 정을 뛰어넘는 고마운 존재들이지요. "

'요리의 중원'을 평정한 '요리의 명장'. 그에게 요리란 무엇일까.

"요리요? 제게 요리는 인생 그 자체죠."

아내와 백화점에 가도 식품 매장부터 찾는다고 한다. 요리는 그의 땀과 시간과 공간이 녹아있는 삶 그 자체다. 인터뷰를 마치며 악수를 청했다.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그의 요리를 맛본 모든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운 정성의 온기가 느껴지는 손이었다.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까지

후 상무가 요리의 명장이 되기까지 8할은 완벽주의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지만 명장을 키워낸 신라호텔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호텔의 차별화된 인재 육성 시스템은 명장을 키워낸 '비옥한 땅'의 역할을 했다.

신라호텔 조리부는 최고 요리사들이 모여 경쟁하는 호텔 레스토랑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로 '요리 사관학교'로 통한다. 신라호텔은 '고용 요리사'의 최고의 직장이자 최고의 교육장이다.

팔선, 더파크뷰, 아리아께, 콘티넨탈 등 총 4개 사업장을 합하면 신라호텔의 조리 인력은 260여명에 달한다. 팔선의 요리팀은 30여명.

최고급을 자부하는 호텔 조리부지만 주방 교육은 엄격하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도제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호텔 주방이라도 그릇닦이부터 시작해야하는 도제식 교육은 피할 수 없다.

힘든 수련 과정에서 재능을 인정받게 되면 세계 최고 요리학교 및 레스토랑 연수 등 최고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신라호텔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학교, 호텔과 제휴를 통한 다양한 장,단기 연수 프로그램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프렌치 론드리, 장 조지 레스토랑, 오랑제리 등 유명 레스토랑은 물론, 프랑스의 보르도, 미국의 나파밸리 등 전문 와인학교에서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전사적 차원의 지원과 교육도 이뤄진다.

인재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최고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신라호텔의 인재 교육은 '요리 사관학교'로 통하는 비결.

호텔신라 출신들은 밖에서도 활약이 크다.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에 신라호텔 출신이 대거 포진해있다.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한국인 초밥 요리사로 등장한 안효주씨는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 출신. '초밥의 달인', '초밥왕'으로 불리는 그는 현재 일식집 '스시 효'를 운영하고 있다.

스파게티로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뽀모도로'를 운영하는 박충준 사장도 신라호텔신라 출신이다. 신라호텔에서 최근 독립해 중식당 '루이'를 연 여경옥씨도 신라호텔이 낳은 유명 요리사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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