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눈먼 자들의 도시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 2008.07.04 10:17
'눈 먼 자들의 도시'란 소설이 있다. 포르투갈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다. 어느 도시에서 한 사람이 갑자기 눈이 먼다. 이 실명은 전염병처럼 퍼져 한 사람만 빼고 도시 전체 사람이 눈이 멀게 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조심하다 곧 다른 사람들도 자기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소변을 아무 곳에서나 보기 시작한다. 질서는 무너지고 도시는 쓰레기와 똥, 오줌으로 뒤덮인다. 사람들은 이 와중에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우며 약한 자들을 핍박한다.

모두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기 공급도, 수도 공급도 끊기고 먹을 것이란 슈퍼마켓이나 음식점, 음식창고에 쌓여 있는 것뿐이다. 눈 먼 자들은 몇몇씩 무리를 지어 먹을 것을 약탈하고 다닌다.

이 소설은 인간이 폭력과 이기주의에 의존하면 눈을 뜨고 있어도 눈 뜬 장님에 불과하다고 속삭인다. 모든 사람이 다 부족하고 약하고 이기적이지만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서로를 돕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 진정으로 눈 뜬 사람이 된다고 타이른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고 엉뚱한 생각에 위안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폭력이 난무하고 불합리한 핍박이 계속되고 앞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목 마르고 배 고프고 똥덩어리에서 뒹굴어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마음을 모을 때 희망은 시작된다.

요즘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경제난이니, 제3의 오일쇼크니 하는 말이 많이 들린다. 외환위기 때처럼 부도난 큰 기업이 없어도, 외환보유액이 텅 비어 외국에 고개 숙이며 돈을 빌려야 하지 않아도 경제위기라고 한다.


위기는 오히려 현실화하지 않았을 때, 뭔가 나쁜 것이 다가오는 것 같은데 실체가 뚜렷하지 않을 때 더욱 극대화한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촛불집회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경제는 어려워진다는데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대통령도, 장관도, 여당 의원들도 경쟁하듯 경제위기니, 오일쇼크니 걱정을 털어놓으니 뭔가 굉장히 나빠질 것이다.

지금 여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당·정·청이 오히려 더 나서 나빠질 것이라고 나팔을 부니 보기에 좋지 않다. 어려움이 닥쳐오는데 대처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어려움에 대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복 경고하는 것도 절망을 예고하며 자기예언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어렵다"고 겁주며 내놓는 대책이 단기적·대증적 처방에 급급할 뿐 '지금은 어려워도 앞으로는 좋아지겠구나'란 희망을 전혀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때 지지한 사람들조차 이명박 정부에 고개를 돌리는 가장 큰 이유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 같은 곳에서도 삶이 계속된 것은 "어렵다" 말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최선을 찾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았기 때문이다. 모은 마음 속에 갑자기 눈이 먼 것처럼 언젠가 기적처럼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다"며 우는 소리만 말고 국민의 마음을 모아 희망을 주는 정부가 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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