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는 지난해 4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만든 드라마 '태왕사신기'로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가 만들려 했던 건 단순한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아니었다.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구조였다. 그는 척박한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벗어나, '아시아류(流)'를 향해 도전하고 있었다.
# 경영자
김종학. 그 이름 자체로 한국 드라마를 상징한다. 그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 한국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을 만들었다. 연출자로서 더 이상 누릴수 없는 정상의 위치에 오른 셈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을 만들었고, 그런 그에게 수많은 선·후배들이 모였다. 김종학프로덕션의 포트폴리오도 역시 화려하다. '이산' '하얀 거탑' '해신' '풀하우스' 등 수많은 히트작을 양산해냈다.
"드라마 콘텐츠를 산업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 경영자를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잘 할 재능도 없습니다. 드라마 연출자로서는 주위에서도, 저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지만요. 세계를 누비며 우리 작품들을 마케팅해 줄 뛰어난 전문 경영인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아직 콘텐츠 산업의 규모가 작고 구조도 열악해, 글로벌 경영자를 영입하기엔 힘든 상황입니다. 경영자 자리는 별 수 없어서 맡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연출자 출신인 김 대표도 콘텐츠 기업의 경영자로서 나름의 장점이 있진 않을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요. 경영자라면 정확하게 수지를 따져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작품 만드는 데만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 회사와 일하는 후배 연출자들의 어깨를 두드려가며, '어떻게든 열심히 만들어. 내가 도와줄게' 이러다보니 경영에선 어려움이 생기지요."
그래서 그는 회사의 경영권 자체엔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산업화된 좋은 제작 구조가 만들어 질 수만 있다면, 전 제가 잘 하는 일에 더 열중하고 싶어요. 전 지난 30년간 연출만 한 덕분에, 좋은 콘텐츠에 대한 시각은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좋은 연출자, 좋은 예술 감독으로서만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 씨앗
김종학처럼 사실 어떤 한 분야에서 이만큼 성공한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오해입니다. 전 별도의 개인재산이 없어요. 제가 가진 회사 지분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주가가 내려가 손해를 많이 봤고요, 태왕사신기를 만들려고 제 집도 팔았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제가 팔았던 집터에 빌딩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내가 뭐 하러 이 힘든 짓을 하나, 그동안 번 돈으로 건물이나 올려 편하게 살걸'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태왕사신기'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 콘텐츠의 산업화를 향한 최초의 도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받아 드라마를 만드는 이른바 '하청구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사가 저작권 자체도 가지지 못했고, '한류'바람이 불며 막연한 기대감으로 인해 출연료와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는 거죠. 태왕사신기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우리 드라마 산업이 아시아 시장으로 제대로 진출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왕사신기는 국내에 이어 일본에서도 공중파로 진출해 호평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DVD, 출판, 캐릭터 상품 및 파친코 초상권 판매 등 2,3차 판권시장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NHK에서 겨울연가나 대장금 못지 않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DVD 메이킹 필름이 이미 50만장 나갔고, 출판물만 방송 4주만에 50만권이 팔렸습니다. 드라마 DVD 본판과 극장 상영 등 다양한 콘텐츠 파생상품이 잘 되고 있어 올 연말이면 제작비가 거의 회수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중일 합작으로 하는 아시아 영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각각 50억씩 총 150억원을 출자해 영화 10편을 만들고, 각 나라에서 각자 배급을 하는 겁니다. 또 세계적인 기획자 테렌스 창과 함께 아시아를 겨냥한 영화 연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문화 콘텐츠 산업이 뻗어 나가야 합니다."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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