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View]크레딧 IR 에피소드

더벨 윤영환 크레딧애널리스트  | 2008.06.27 15:54
이 기사는 06월27일(13:2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크레딧 IR은 그리 흔한 행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다분히 정형화된 주식 IR과는 달리 뜻밖의 논란거리가 생기곤 한다. 몇 년 전 크레딧 IR의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화했을까 짚어보려 한다.

[에피소드 1] 은행에 대한 무한 신뢰

지나치게 은행에 의존하는 재무정책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자금부장이 한마디했다. “장기 회사채보다는 은행 단기 차입금이 훨씬 안정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IR은 끝났다.

너무도 진솔하고 무신경한 발언에 놀라고, 엄청난 인식의 괴리에 좌절했다. 그 회사채는 기피 종목이 되었고, 얼마 후 신용등급 하락에 산업은행이 채권을 매도하면서 채권가격은 깊고 오랜 폭락을 경험해야 했다.

은행에 대한 무한 신뢰는 신용평가도 마찬가지다. 카드위기가 무르익던 시절 평가회사는 카드사의 자금조달 가운데 은행과의 대출채권 매각거래에 대해 매우 안정적인 자금조달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단속’하면서 거래가 전면 중단되고 카드사 자금조달이 꼬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자금조달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으로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 하지만 우리 은행의 영업구조는 대단히 단순하다. 이자수익 비중 84%는 선진 은행들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건설PF도 이러한 은행의 과감하고 단순한 영업방식에 의해 위험의 크기가 증폭된 대표적인 사례다.

자본시장의 미성숙으로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한 것인지, 반대로 은행의 막강한 지배력으로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흡사 닭과 달걀의 문제와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도한 은행 편중 금융구조는 반드시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피소드 2] Usance의 정체

신용이슈를 겪으면서 Usance(수입금융)의 급격한 축소로 고생했던 정유회사 IR책임자에게 소회를 물었다. “우리도 Usance(정확하게는 Banker’s Usance)가 회계적으로는 단기차입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매입채무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겪어보니 차입금 맞더군요. 그것도 아주 악성의 차입금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평가보고서에서도 “단기차입금은 많지만 대부분 무역금융(Banker’s Usance)으로 안정적 운용이 가능하여 자금경색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언급을 자주 본다. 얼마 전 어느 평가사의 유동성리스크 분석방법론 설명회에서 제시한 분석 샘플은 아예 Usance를 여유자금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메멘토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사실 무역금융은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자금흐름에 대한 판단만큼은 혼선이 없어야 한다. 더욱이 현금흐름을 특히 중시하는 현대 신용분석에서 매입채무와 단기차입금의 혼선은 치명적인 판단오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3] 잔돈 세는 CFO

마침 대형 금융사고가 터진 날이라 빈자리가 많은 썰렁한 IR이었다. 그래도 힘을 내어 CFO에게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물었다. “여유자금을 줄이고 장기차입금을 단기로 전환하면 금융비용을 대략 50억원 정도는 줄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 들을 이야기는 없었다.

최근 모 경제주간지는 CFO의 역할을 소개한 글을 실었다. 제목이 “잔돈 세지 않고 전략을 짠다”였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전략은 없고 잔돈이나 세는 것을 재무정책으로 생각하는 CFO가 너무 많다. 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한 안정적인 재무구조에 대한 개념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위기의 경험과 신용평가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교육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용평가는 이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 16%대의 유동비율로도 AA+의 신용등급이 가능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에야 유동성리스크 분석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기왕의 신용등급 체계를 최대한 존중할 모양이다. 다시 말해 유동성리스크를 이유로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지는 않겠다는 것이 신용평가의 분위기다.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대응능력이야 말로 회사채가 다른 차입수단에 비해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다. 회사채 시장이야말로 신용평가사의 존재 기반이다. 그러면 유동성리스크에 대해 관대한 신용평가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신용평가라는 제도가 있기에 평가사도 그냥 존재하는 것인가?

[에피소드 4] 전략과 비전에 대하여

외국인 부사장이 IR에 나왔다. 합작선을 대표하는 이였기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말미에 핵심경쟁력과 비전을 물었다. 외국인 부사장의 눈이 커졌다. “한국에 와서 2년이 넘었습니다만 그런 질문은 처음입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그리고 상당 시간에 걸쳐 담론을 쏟아냈다.

크레딧 IR이든 주식 IR이든 대부분 실무적인 질의와 응답이 주를 이루고 담론은 드물다. 무조건 잘하겠다는 것으로는 담론이 되지 못한다. 정확한 현실 인식과 대안 제시를 통해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IR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평가보고서도 마찬가지다. 평가보고서는 모두 기업의 신용도에 대한 평가사의 판단을 담는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크게 보면 사실 관계를 열거하면서 은근하게 투자 판단을 드러내는 방식과 구조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명확하게 투자 판단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대별된다. 정보 수집이 어렵던 시절에는 사실 관계를 나열하는 보고서가 환영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논리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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