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20에 MS 세운 게이츠, 도로선 '난폭'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 2008.06.27 10:36

[굿바이 빌게이츠②]소프트웨어를 통한 수익창출

◇ 1975년 스무살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1975년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할 당시 게이츠의 나이는 스무살에 불과했다. 당시 고교친구 폴 알렌과 함께 지분 50대 50으로 MS를 창업했다. 스티브 발머는 학업을 끝마치고 MS에 합류했다.

게이츠는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얼굴 때문에 곤혹스런 일을 자주 치러야 했다. 사장실에 들어가려다가 새로 고용한 비서에게 제지당하기도 하고, 사업차 만나는 업계 관계자들로 부터 무시당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 24살의 게이츠

게이츠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로 알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게이츠는 직접 나서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서 법정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시애틀의 유명 변호사인 아버지를 배경으로 둔 게이츠는 직접 부딪혀 가며 싸우기보단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 스피드광 게이츠, 속도위반 단골 적발

게이츠는 소문난 스피드광이다. 특히 MS 초창기 시절 게이츠는 자신의 보물 1호였던 고급 스포츠카 포르쉐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엑셀을 밟아대며 한껏 속도를 즐겼다.

당시 MS는 현재의 시애틀이 아닌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라는 소도시에 위치해 있어서 게이츠는 출장을 위해 공항에 갈일이 잦았다.

그런데 게이츠에게는 비행기 이륙을 불과 20~30분 남겨놓고 회사에서 출발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게이츠는 이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무수히 많은 속도위반 딱지를 뗐다. 물론 게이츠는 개의치 않았다.

하루는 또 비행기 이륙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역시 엄청난 스피드로 도로를 질주하던 게이츠는 속도 위반은 물론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그대로 공항으로 달리는 바람에 결국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해 체포된 게이츠
얌전한 게이츠의 얼굴로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 모습이다.

◇ MS-도스, 거대한 부를 안기다

많은 사람들이 게이츠를 '위대한 선각자'로 칭송하는 이유는 그가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조차 미미하던 시절, 수익모델로서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당시는 소형 컴퓨터가 막 시장에 소개되던 시절이라 컴퓨터 업계에서 성공을 꿈꾸는 사업가라면 하드웨어 개발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MS 초창기 시절 게이츠의 명함

그러나 게이츠는 '하드웨어'에 집중하기보단 '소프트웨어'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게이츠의 이 같은 포부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사명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고(micro) 소프트(soft)한 분야에 매진하겠다는 포부가 MS를 창립할 때부터 게이츠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MS 초창기 시절 게이츠의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사명 때문에 게이츠를 아이스크림 회사 사장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우선 소프트웨어를 복제해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던 분위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언론을 통해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컴퓨터 사용자들은 이 같은 게이츠의 주장에 반발했지만 게이츠는 "돈을 주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고품질의 소프트웨어가 계속 개발될 수 있다"고 맞섰다.

MS는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당시 최고의 컴퓨터 제조사였던 IBM으로부터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받게 된다. 사실 이 같은 제안은 MS에겐 모험이었다. 당시 MS의 역량이나 규모 면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 개발이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이츠는 모험을 선택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MS-도스는 MS 사상 최고의 축복으로 기록되게 된다.

MS는 당시 연매출이 4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도스가 출시된 1981년 1600만 달러로 급성장하게 된다. 이후 MS는 승승장구해 1985년 1억4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뉴욕증시에 상장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게이츠도 억만장자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같은 MS 급성장의 배경에는 IBM이 있었다. 당시 컴퓨터시장은 제조업체마다 각각의 운영체제와 중앙처리장치(CPU)등을 사용해 호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생산업체들도 개발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자 IBM은 모든 컴퓨터가 하나의 표준규격을 사용하자고 제안을 한다. 이 같은 제안으로 IBM에 CPU를 공급하던 인텔과 운영체제를 공급한 MS는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됐다.

IBM은 물론 게이츠에게서 도스 이용 판권을 구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게이츠는 도스 판매에 따른 로열티를 MS에 지급하라고 맞섰다. 시간에 쫓기던 IBM은 결국 게이츠의 이 같은 요구사항을 수용했고, 이 협상을 통해 게이츠와 MS는 엄청난 부를 획득하게 된다.

◇ 결혼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다

▲ 멜린다와 게이츠
게이츠는 1994년 MS 직원이었던 멜린다와 결혼을 한다. 그는 멜린다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나보다 더 퍼즐을 잘 맞추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대한 결혼식을 위해 하와이의 한 호텔을 통째로 예약하고, 근처 골프장 그린에서 이색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통해 게이츠는 일 중독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모했고, 그의 삶도 한결 여유가 넘치게 됐다.

또한 게이츠는 멜린다를 통해 기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돈을 잘 버는 문제에서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문제로 관심이 전환된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의 전환은 2000년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설립을 통해 구체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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