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꽃가루 세례와 친지.동료들의 축복을 받았던 신랑은 몇개월전까지는 천막 노숙을 했다. 식장에서 빠져나온 신랑이 처음 밝힌 심경은 "만감이 교차한다"였다.
아이가 있고 생활이 안정될때까지 미뤄뒀던 결혼식을 4년여만에 치른 탓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새벽에는 한없는 냉기가 올라오고 낮에는 열기가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천막을 쳐놓고 농성을 했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난 21일은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과 농성을 선언한지 283일 되던 날이다. 이들은 지난해 9월 12일 이후 천막 신세다.
언제 파업이 끝날지, 언제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 부부의 결혼은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치러진 셈이다.
박씨는 결혼식을 마친 후에도 "결혼을 해서 기쁘지만 앞으로 (파업이) 어떻게 해결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결혼식 준비와 생계를 위해 수개월 전부터 농성장에서 떠났던 그는 동료들에게 미안함도 표시했다.
신혼부부의 결혼을 축하해야 하는 동료들의 마음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반팔셔츠 차림으로 노숙을 하다 이날은 양복을 입은 하객이 된 조모씨는 "이런 상황에 결혼식을 치르게 해서 미안하다.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해결이 났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최근 물러난 이 전 사장은 1966년부터 지난 2005년까지 40년간 공직 생활을 하며 9급 서기보에서 1급 세제실장까지 거친 입지전적 인물이다. 40여년의 공직생활이 그의 입지전적 신화의 바탕이었다면 사장 2년차인 지난 9개월여는 또다른 시험대였다.
그는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과 노동계의 대응이 충돌했던 지점이 코스콤이었다"며 "코스콤과 농성하는 이들은 때로는 자신들의 입장을 진솔하게 밝히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농성하는 이들 못지 않게 인간적인 어려움과 고민도 많았다"고 밝힌 이 전 사장은 어렵사리 결혼식을 치른 부부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
결혼식 뒤 박씨는 "앞으로 잘 되리라고 믿는다"는 말을 남기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그의 동료들은 다시 천막으로 돌아갔다. 284일째 이어지게 될 아스팔트 농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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