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버냉키와 이성태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 2008.06.20 07:10
앨런 그린스펀 시절 '선제적 통화정책'으로 명성을 얻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요즘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금리를 과감히 내린 지 1년도 안돼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충격이 가신 것도, 경제가 다시 활기를 띠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고유가로 경기침체보다 무섭다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눈앞에 둔 여건에서다.

너무 '신중한' 조치로 한때 궁지에 몰리기도 한 유럽에선 이제 "벤 버냉키 FRB 의장이 금리인하 조치를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며 안도감 섞인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미국이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기준금리를 3.25%포인트 낮춘 사이 영국은 0.25%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쳤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한국은행도 FRB에 동조하지 않은 점이 뒤늦게 평가를 받는 분위기다. 정부 교체가 포함된 지난 10개월 기준금리를 내리 동결하면서, 특히 경제팀이 당한 공박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은이 편안해 하는 것도 아니다. 제1의 존립목적인 물가안정이 중대한 위협을 받는 탓이다.

"매달매달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금리는 아래와 위가 항상 열려있다." 지난 12일 금리동결 후 이성태 한은 총재의 언급은 이런 고민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은 낮아지는 쪽이고, 물가는 반년 사이에 상당히 누적돼 있다고 진단한 한은으로서는 금리를 조정하기가 여의치 않다.


물가의 주요 지표들은 이미 '비정상적인' 시기였던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더구나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라는 공급 측면의 압박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에 미치고 있고, 자칫 기대인플레이션까지 자극하며 고물가의 악순환에 빠뜨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총재도 물가가 오른 품목 중에는 원가상승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진정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를 건드리는 변수는 원자재 만이 아니다. 지난주 일본에서 모인 주요 8개국(G8) 재무장관이 세계적 인플레이션에 공동 대응하자고 하면서 '강한 달러'를 지지했듯 환율도 물가의 진폭을 좌우한다. 성장을 위해 '약한 원화'를 추구한 경제팀이 부랴부랴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며 환율을 끌어내리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나아가 고유가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정부가 준비 중인 재정지원책 역시 유동성을 늘려 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고유가 대책이 인플레이션을 키운다는 지적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은 상당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때 성급한 정책은 금물이다. 환율이나 금리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고통스럽겠지만 시장의 흐름을 우선 예의주시하는 '게으름'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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