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 폐지, 새 정부 최대 실책"

대담=권성희 정경부장, 정리=오상헌 기자, 사진=이명근 기자  | 2008.06.19 10:32

[창간 7주년 기획]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 인터뷰

-경제부총리 부활, 각료추천권까지 줘야
-금산분리 완화, 단계 줄여 속도감있게 추진해야
-메가뱅크도 필요, 대우+우리證도 한 방법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지혜'란 말을 좋아한다. 그의 미니홈피 첫 화면에는 '지혜는 물과 같아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란 문구가 있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지혜를 쌓고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라고 한다.

 지난해 8월, 3년간 맡아온 금융감독수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화두도 '꿈(wish)', '의지(will)' 그리고 '지혜(wisdom)'였다.

당시 그는 퇴임사에서 "금융 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새 발상을 이끌어낼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경제신문 창간 7주년을 기념해 윤 전 위원장을 만나 한국 경제의 난국을 타개할 '지혜'를 들어봤다.

 - 쇠고기 파동 이후 현 정부가 총체적 국정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정부가 국정 철학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실용'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을 지향하는 수단과 방법일 뿐이지요. 실용주의에 앞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가치와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최근 정부가 고유가 정책에 대처하기 위해 세금 환급이란 처방을 들고 나왔는데요, 대중 영합주의란 비판도 많습니다.
 ▶요즘 여권에서 서민대책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은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정치와 경제는 참 조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치는 평등을 지향하고 경제는 효율을 우선하지 않습니까.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선 효율과 합리를 따지는 경제논리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정치논리로만 풀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중요한 것은 임시방편, 미봉책으로 문제를 땜질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때론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 국정 운영 기조가 '성장'에서 '안정'으로 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에서 성장과 안정,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논란을 하다 보면 밤이 새도 모자랍니다. 물가가 위협받으면 서민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성장을 안 하면 일자리가 정체됩니다. 두 마리 토기를 잡을 수 있느냐가 문제죠.

다만 현 시점에서는 유가, 농산물 가격 등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외부 요인이 많이 작용하고 있어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 여권에선 '외환위기' 상황이 비슷하다란 얘기도 나옵니다.
 ▶ 자만과 나태는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상으로 어려움을 과장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절망을 줄 뿐입니다. 저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때와 상황과 비슷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외환위기 때에 비해 잘 대비돼 있습니다. 경제는 심리입니다. 과장하는 것은 경제에 부정적입니다.

 - 경제정책 운용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경제부총리를 부활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 경제운용에 있어 각 변수들이 항상 충돌합니다. 예컨대 성장이냐 물가 안정이냐, 대외균형이냐 대내 균형이냐 등이 있습니다. 경제에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 없어요. 경제학에선 이를 '트레이드오프'라고 합니다. 정부 부처내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조정해주는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저는 경제부총리를 없앤 것이 새 정부의 최대 실책이라고 봅니다. 경제부총리는 또 팀 플레이가 돼야 합니다. 경제를 보는 시각과 철학이 같은 사람들끼리 팀을 이뤄 책임지고 정책을 해야 합니다. 경제부총리를 부활하고 각료추천권까지 부여해야죠. 지금도 쇠고기 문제를 보면 농림수산식품부 혼자 고군분투합니다. 과거 같으면 관련 부처들이 협의해서 대처했을 텐데 지금은 부처간에 이렇게 협의하고 조율해줄 컨트롤타워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적쇄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기획재정부 장관을 교체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장관은 역량을 갖춘 분이고 대통령과 신뢰관계도 있고 조직도 갖췄습니다. 겨우 100일이 지났는데 성급히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정책이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려면 최소 2년은 책임지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부문 개혁이 뒤로 미뤄지는 분위기입니다.
 ▶공기업 민영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기업'자가 붙었으면 특별한 공공재를 생산하는 곳 외에는 민영화가 최선입니다. 분위기에 밀려 공기업 민영화를 연기한다는 것은 공공부문 개혁의 중대한 후퇴라고 봅니다.

 - 새 정부 초기 고환율 정책이 논란이 됐는데요.
 ▶ 환율엔 언제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절대선은 없습니다. 다만 변동환율제 시장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또 정책 당국자는 공개적, 공식적으로 환율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글로벌 규범입니다. 정부가 시장에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려 하면 대외적으로 큰 파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정교하고 기술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 새 정부 들어 공공기관장의 재신임 문제로 한참 시끄럽더니 인사 공백도 장기화하고 있는데요.
 ▶공기업을 비롯한 모든 인사를 청와대가 직접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각 주무부처에선 인사에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구요. 원칙적으로 각 부처에 일과 인사권을 같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청와대도 많은 부담을 덜 수 있을 겁니다.

 - 현 정부가 단계적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일관되게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해오셨습니다만.
 ▶ 정부가 발표한 단계적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3단계로 추진한다는 것인데 기간이 너무 깁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최소한 2단계로 줄여서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합니다.

금산분리는 자원배분의 효율화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유한한 국가 자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배분했느냐에 따라 그 나라 경제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자기자본이 35조∼36조원인데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가장 큰 곳이 기껏 2조원 남짓입니다. 반면 산업자본은 어떻습니까. 상장사들 부채비율이 100%가 안 돼요. 현금이 투자가 안 되고 놀고 있는 겁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간에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금산분리 완화의 부작용만 얘기하다 보면 백년하청이 돼 버립니다. 부작용은 감독 강화로 풀면 됩니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합니다.

 - 금융시장에선 산업은행 민영화가 화두입니다. 국제 투자은행(IB)과 경쟁하기 위한 메가뱅크안도 나와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 글로벌 시대엔 글로벌 플레이어를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에 민영화 과정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를 내놓는다는 차원에서 메가뱅크도 하나의 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민영화 속도를 함께 감안해야겠지요.

지금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가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인데 이 두 증권사를 합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증권사를 합해도 자기자본이 4조∼5조원 수준으로 글로벌 IB에 비해서는 한참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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