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쇠고기사태와 2만弗시대

머니투데이 유승호 산업부장 | 2008.06.18 14:52

얼마전 하나로마트 달걀코너에서 달걀을 고른 적이 있다. 1개에 100원짜리부터 300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했다. 가장 비싼 달걀을 집어들었다. 2배, 3배씩이나 비싼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無생산촉진제/無성장호르몬제/無항생제'라고 찍혀 있었다. 그걸 읽고 나니 다른 달걀 집기가 새삼 겁이 났다.

 한방생약제나 소백산 자락 지하 170m 천연암반수를 먹인 닭의 달걀까지 고를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들 먹일 건데 '無***'가 찍혀 있지 않은 달걀을 살 수는 없었다.
뭘 먹기가 겁난다. 때론 아는 게 병이 되기도 한다. 하루종일 자기 몸통만한 닭장에 갇혀 알만 낳는 닭은 화를 품게 되고 그 닭이 낳은 달걀도 정상일 리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달걀을 샀는데 이후 달걀을 살 때마다 닭장에 갇힌 닭이 떠오른다.
 
'쇠고기 사태'와 함께 이물질 파동, 조류인플루엔자에 이르기까지 가히 식란(食亂)이라 할 만하다. 검역 과정이 의심스런 정체불명의 중국산이 우리 밥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새우깡에서 생쥐머리가 발견되더니 급기야 광우병 괴담까지 더해지면서 '먹을거리 노이로제'가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에 갔다와서는 "오늘 육개장이 나왔는데 안 먹었다"고 말했다. 한 아이가 갑자기 "쇠고기다!"라고 외치자 다른 아이들도 모두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당황한 선생님이 급기야 "육개장 먹지 말고 다른 반찬만 먹어라"고 달랬다는 얘기였다. 아직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기도 전이지만 아이들의 쇠고기 신드롬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쇠고기 파동으로 대표되는 '먹을거리 노이로제'는 2만달러 시대의 이정표로 기록될 것 같다. 대량 생산을 통해 값싸게 식재료를 공급하는 것이 지상과제이던 산업화 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초식동물에게 동물사료를 먹이는 것과 같이 대량 생산을 위해 사용된 각종 항생제, 호르몬제 등에 대한 검증 심리가 발동했다. '먹을거리 노이로제'를 놓고 먹고 살 만하니까 입맛이 까다로워졌다고만 치부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옛 우리 음식은 모두 웰빙식품이다. 마당에 놓아 기른 닭, 두엄 뿌려 키운 야채 등 전통 식재료는 이른바 유기농 식품이었다.

 쇠고기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다. 옛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직접민주주의가 인터넷광장(아고라)을 통해 부활했고, 4년 또는 5년마다 투표를 통해서만 심판할 수 있던 간접민주주의가 의미를 잃었다는 분석은 위정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것이다.

 2만달러 시대를 맞아 정부 및 공공서비스에 대한 입맛도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당장 민심에 어필하려 드는 짜고 매운 자극적인 정책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순하고 부드럽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체질을 건강하고 균형잡히게 하는 믿을 만한 정책서비스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각종 정보가 공유되는 정보화 사회에 설익은 정책이 민심을 잠시도 속일 수 없게 됐다.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주방을 개방하는 음식점처럼 공공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음식재료나 요리과정, 그에 얽힌 역사를 곁들여 설명해주는 음식점이 인기를 끄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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