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쯤 달렸을까. 수빅만의 해변도로에 접어들자 바다 건너편에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눈에 들어온다. 선박의 선체를 구성할 대형 블록들을 옮기는 설비다. 크레인 주변은 파란색의 조립 공장들이 즐비하다. 특이한 것은 조립 공장들에 모두 지붕이 달렸다는 점이다. 옥외 작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조선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우기를 대비해 마련된 비장의 무기는 또 있다. 셀터(shelter)라는 설비다. 바닥이 없는 철제집 모양의 이 설비는 비가 올 때 도크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비가 올 때 크레인으로 들어서 선박에 올려놓고 그 안에 작업을 하게 된다. 2개의 셀터가 이달 말 완성돼 곧 작업에 투입된다. 추가로 2개의 셀터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2단계 공사도 한창 진행중이었다. 2단계 공사가 완공되면 수빅조선소는 길이 550미터, 폭 135미터, 깊이 13.5 미터짜리 초대형 도크(6도크)를 보유하게 된다.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짓게 된 것은 협소한 공장 부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부지는 불과 8만평.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200만평에 달하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도 100만평을 훌쩍 넘어선다.
김정훈 한진중공업 부회장은 "영도조선소와 울산, 다대포 등의 블록 생산 공장을 합치면 국내 공장부지는 모두 40만~50만평 가량 된다"며 "수빅조선소를 합치면 120만~130만평 규모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저렴한 인건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2교대 근무를 시도하고 있다. 낮 뿐 아니라 야간에도 배를 짓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철강업계 등은 교대 근무가 일반화돼 있지만 조선업계에서 이 같은 시도는 처음이다. 인건비에 경쟁력이 있는 만큼 설비 가동률을 최대한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2교대 근무에 대한 아이디어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직접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부 작업에 2교대 근무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곧 대부분의 작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2교대 근무를 통해 연간 40척 이상 양산 목표를 5년 앞당겨 2011년에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 1번지’에서 자칫 중소형 조선소로 전락할 위기를 필리핀 수빅이라는 해외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망갈리아 조선소 등 다른 국내 조선사들도 해외에 조선소를 건립한 사례들이 있지만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가 주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김정훈 부회장은 "안락한 국내를 떠나 해외로 가기까지 의사 결정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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