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촛불을 지켜본 한 기자의 고백

머니투데이 박형기 통합뉴스룸 1부장 | 2008.06.13 08:57
이번 촛불 집회를 지켜보면서 저는 언론 권력의 대이동을 보았습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던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1인 미디어 또는 인터넷 미디어 시대로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정보가 한 곳(매스미디어)에 집중되던 정보의 비대칭성이 깨지면서 네티즌들의 인터넷 미디어는 기존의 매스미디어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 미디어인 머니투데이에서 온라인을 총괄하는 부장으로 이번 촛불 시위를 쭉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네티즌의 정보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기존의 신문사보다 더 빠른 정보 수집 능력과 전파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머니투데이도 네티즌의 댓글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사이트에 ‘수허천사’라는 ‘댓글왕’이 있습니다. 그는 촛불 집회와 관련된 거의 모든 기사에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면서 머투의 취재 방향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난 1일 처음으로 물대포가 나왔을 때, 머투 현장기자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뿌리고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수허천사는 그 글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고 바로 댓글을 달았습니다. 현장 기자에게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고 그 기자는 지금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허천사는 항상 머투를 앞서갔습니다. 그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누리꾼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촛불집회 기간 네티즌들이 주장한 것 중 여학생 사망설 이외에는 거의 모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이 유언비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스트리트(길거리) 저널리스트들’이 생산한 뉴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신속성과 정확성이 기존의 언론사를 압도한 것 같습니다.

현장 기자들뿐만 아니라 신문사 칼럼니스트들도 네티즌들의 댓글을 커닝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촌철살인의 댓글을 칼럼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은 각각의 아이디어를 모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명박산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광화문에 컨테이너 박스가 등장했을 때 여러 수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명박산성이라는 표현을 쓰자 그 뒤로 그 흉물은 명박산성으로 수렴됐습니다. 2mb도 마찬가지고요. 이뿐 아니라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 시리즈도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시작하자 다른 사람이 덧붙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공동 작업을 하기 때문에 칼럼니스트 하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곡을 찌르는 비유가 많습니다. 수 백만 네티즌의 집체창작물을 일개 직업기자나 언론사가 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기존의 언론사는 네티즌의 속보성과 정확성에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론도 이제는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네티즌들이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네티즌들은 제2의 명동성당으로 떠오른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의견을 결집하고 여론의 향방을 결정합니다. 다음 아고라 톱에 올라오는 글들은 언론인이 보기에도 칼럼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이들은 치열한 토론을 거쳐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미 여론 형성의 패권이 조중동에서 아고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언론은 아직도 국민을 가르치려 합니다. 무지몽매(?)한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티즌들은 광고 테러, 쓰레기 테러를 가하면서 일부 언론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제가 일하고 있는 머니투데이를 포함해서 기존의 언론은 거북이의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격변기에 머투가 잘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사실 머투가 아니라 제가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저는 이미 40대 초중반이어서 그런지 네티즌의 호흡을 따라가는 게 벅찹니다. 갈수록 능력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낙향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근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아고라는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까요. 미래의 언론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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