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위대가 철저히 비폭력으로 일관했고, 경찰도 여느 때와 달리 마지막까지 남은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았다. 경찰은 아침 출근대란을 막기 위해 보통 새벽 5~6시부터 시위대의 강제해산에 나섰으나 이날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시위대의 철저한 비폭력 견지와 경찰의 인내가 50만 명이 참석한 집회에서 단 한 명의 중상자도 나오지 않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10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시위의 클라이맥스는 이른바 ‘명박산성’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 장벽과 스티로폼의 싸움이었다.
경찰은 10일 아침부터 시위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광화문 사거리에 5.4m 높이의 컨테이너 박스를 쌓았다. 시위대의 대응은 역시 빨랐다. 시위대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명박산성을 넘을 묘책을 찾았고, 그것은 스티로폼이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지만 시위대는 계단을 만들 수 있는 스티로폼을 준비했다. 스티로폼을 쌓자 바로 컨테이너 장벽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됐다. 일부 시위대가 컨테이너 장벽에 오르자 시위 군중은 일제히 “비폭력”, “내려와” 등을 외쳤고, 결국 스티로폼은 철거됐다. 이후 스티로폼이 다시 등장했으나 장벽 앞에 스티로폼 탑을 쌓고 자유발언대로 이용됐을 뿐 폭력시위에 이용되지는 않았다.
이 같은 쾌거를 이룬 원동력은 무엇일까. 인터넷이다. 시위대는 ‘제2의 명동성당’으로 불리는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시위에 나오고 있다. 이들은 형식상의 주최 측인 광우병 범국민대책위의 지시를 “니들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며 따르지 않는다. 현재 시위의 주력부대는 대책위가 아니라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나온 시민들이다.
87년 6.10 항쟁 때는 시위대가 지도부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른 바 ‘민주독재’였다. 독재정권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시위도 독재가 필요했다. 당시에는 시위를 조직적으로 벌이기 위해 민주독재가 용인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대의명분만 같이 할 뿐 행동은 그룹별로 알아서 한다. 시위에도 완벽한 민주화가 이뤄진 것이다.
기자는 시위의 민주화를 완성시킨 그룹을 ‘쇠고기 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은 5.18, 6.10을 겪었던 이른바 386 세대와는 DNA가 다르다. 주로 20~30대인 이들은 40대인 386보다 훨씬 인터넷 프렌들리하며,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교환과 브레인스토밍에 익숙하다. 이들은 인터넷을 무기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시위의 시너지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은 386 세대같은 비장감도 없다. 386세대들은 6.10항쟁 당시 목숨을 걸고 가두시위에 참여했었다. 이들은 시위를 즐기며, 축제 수준으로까지 격상시켰다.
5.18과 6.10을 겪었던 386이 이전세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민주화를 성취한 자신감이다. 쇠고기 세대 역시 이미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 냈고, 정부로 하여금 사실상의 재협상에 나서게 했다. 이들은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386을 이어 한국 사회를 주도할 것이다.
한국의 촛불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 되자 미국의 권위지인 NYT는 한국 촛불시위를 소개하며 별도 기사를 통해 미국 쇠고기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국의 촛불이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쇠고기 세대가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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