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드골과 이명박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 2008.06.11 08:52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몰락은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발단은 대학생들과의 불화였다.

1965년 앙토니 대학 기숙사 학생들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서로의 건물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프랑스 대학은 대부분 국립이라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철부지들의 터무니없는 요구라며 철저히 무시했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가슴에 드골은 권위주의, 권력,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거부감이 쌓여 갔다.

드골은 드골대로 자유분방함으로 흘러가는 당시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점점 더 젊은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불편했고 그래서 만남을 피했고 소통은 단절됐다.

소소한 시위가 계속되던 중 1968년 3월에 파리대학(소르본대학)의 분교가 위치한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구속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대학 학장은 5월2일 대학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시위는 오히려 파리 시내 한복판으로까지 퍼져나갔고 경찰들은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는 더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켜 5월13일부터 노조가 시위에 합세했다. 이 결과 총 400만명이 파업과 공장 점거, 대규모 시위에 가담했다. 이것이 프랑스의 5월 혁명이다.

드골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5월30일 담화문을 발표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자신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 투표 결과 그는 47%의 지지와 53%의 반대로 대통령직에서 중도 하차해야 했다.

드골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던 프랑스를 재건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왜 그는 마지막에 실패했을까.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을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안국포럼에서 꺼내 들고 있는 모습이 사진을 타고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드골은 늑대로부터 양들을 보호하는 목자처럼 국민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국민들이 양처럼 잘 따라주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중략) 정부가 국민의 현실적인 필요와 기대에 무관심하거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또한 대통령이 국민보다 국가를 훨씬 더 사랑한다는 느낌을 줄 때, 국가의 권력과 위신-드골의 프랑스에 대한 비전이었던 '고귀하고 특별한 운명'-은 공허한 것일 뿐이었다."

이 대통령은 목자가 되어 어린 양과도 같은 우리를 이끌어 한국을 선진국가로 도약시키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국민의 현실적 필요와 기대에 무관심했을 때, 국민이 생활에서 느끼는 요구보다 한국이란 국가 자체의 미래에 몰입했을 때 그가 제시하는 위대한 비전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 대통령은 무엇으로 이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 스스로 '마음에 와 닿는 책'이라 추천했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에 또 다른 힌트가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사례다.

"루스벨트는 미국인들이 가진 현실적이고 고동 치는 필요에 대답했고 높아져가는 그들의 요구와 기대 수준에 부응하는 정책들로 행동에 나섰다."

이 대통령 자신의 머리와 측근들과의 고담준론에서 나온 '우리끼리의 결단'이 아닌, 거리로 뛰쳐나온 국민들의 필요와 요구에 진정으로 대답하는 행동을 보여줄 때 난국을 타개할 활로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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