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도 한 땐 '오대영' 감독이었다

황인선 KT&G 북서울본부 영업부장 | 2008.06.10 12:31

[마케팅 톡톡 ]불안과 희망 그리고 톨레랑스

한국 사람들은 빠르다고 합니다. 최빈국이었다가 가장 빨리 경제성장을 한 나라 한국의 배경에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빨리 빨리’가 왜 생겼을까요?
 
살기 좋은 봄과 가을은 짧고 살기 어려운 여름과 겨울은 길죠. 없는 시대에 여름과 겨울은 무섭습니다.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베짱이가 됩니다.

1년 12달도 24절기로 쪼갭니다. 대륙문명과 해양세력의 틈에 끼여 불교, 유교, 기독교 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했고 전쟁과 숙청도 숱하게 치러냈습니다.

일제와 반쪽정부, 6.25, 좌우대립,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의 한, 호남의 한, 이데올로기의 한을 허덕허덕 풀면서 실용정부로 왔죠. 출세 사상이 머릿속에 한 가득이니 새치기, 조기유학, 학력위조, 투기도 불사하면서 빨리 가려고 난리입니다.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요.
 
◇불안 코드를 자극하면 시장이 생긴다
 
그래서 불안 코드를 자극하면 거기에는 큰 시장이 생깁니다. 수돗물이 위험하다고 하니 정수기, 생수 시장이 생겼고 4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최고라 하니 고로쇠, 보약, 녹차가 동납니다.

환경의 역습, 새집증후군이라 하니 웰빙 시장이 어마어마합니다. 평균연령이 늘어난다니 노(老)테크 시장에 20대들도 뛰어듭니다. 한 가지를 제대로 하기도 힘든데 ‘20대에 해야 할 30가지’ 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광우병 얘기가 나오니 온 국민이 흥분합니다.
 
‘Raise Fear, Offer Hope(두려움을 자극한 후 희망을 제공하라)’란 경구가 있습니다. “지옥에 가겠습니까 아니면 예수 믿고 천당 가겠습니까 ”, “칼을 받겠수, 코란을 읽겠수 ” 불안감을 자극하고 희망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단순하지만 임팩트 있습니다. 정치마케팅, 웰빙식품, 제약, 도박광고 등은 불안감을 자극하고 제품을 쓰면 바로 희망이 온다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잠깐. 과연 희망이 바로 오나요? 그러면 세상이 쉽게요. 선량이라고 찍었더니 정치 한량 되고, 몸에 좋다고 막 먹었더니 죽을 때 고생한다고 하고, 대박은 항상 남의 것일 뿐이고, 무늬만 웰빙도 허다합니다.

불안을 넘어 희망으로 가려면 지혜와 인내가 필요할 겁니다. 이순신 장군, 정조 이산은 12척의 배, 노론의 위협 속에서 지혜와 인내로 명량대첩, 탕평의 길을 열었습니다. 두 분은 전사와 독살(?)로 희망을 당대에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천하(血染山河)' ‘불멸 마케팅’, ‘정조경영’ 화두는 수백 년 지난 21세기 한국에 다시 불안을 넘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불신과 미혹에서 신앙으로 가려면 의혹과 시험의 단계를 거쳐야 하듯이 불안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중간에는 꼭 과도기, 중간지대가 있습니다. 현자는 막연히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이 과도기와 중간지대를 잘 견뎌내는 사람들일 겁니다.
 
에 과도기에 주목하란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학생시대-취업시대-중년-노년이라는 전형적인 시기를 상정하고 마케팅을 하지만 실제로는 실직, 半취업, 연수, 휴가 등 과도기가 1/3이 넘고 여기에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개인들 입장에서는 이 과도기의 시험을 잘 넘어야 하고 기업에서는 흔들리는 과도기의 사람들이 기회인 거죠.
 
시간에서 과도기는 공간에서는 중간지대일 겁니다. 157의석으로 딱 과반수를 만들어준 국민, 광우병 광기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민, 대운하를 찬반대상이 아니라 ‘ 문제는 늘 있다. 어떻게 개선해야 100년 한국의 솔루션일까?’를 쫓는 사람들이 아마도 중간지대에 선 사람들이겠지요.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컬처코드>에서 말한 ‘긴장의 스펙트럼’이란 개념도 같은 개념일 겁니다. 극단에서 중도의 길을 찾는 것은 마케팅 상에서도 유효합니다.

◇톨레랑스 마케팅
 
사람 또는 사회가 성숙했다는 것은 과도기의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중간지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겠죠. 이 중간지대는 'Tolerence(관용)지대' 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5대빵 감독' 히딩크를 지켜보던 우리, 일방적 이익을 넘어서 같이 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착한 마케팅 또는 공정 무역(Fair Trading)', 빌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론은 악덕기업과 착취당하는 빈국 대중의 대립에서 아름답게 존재하는 새로운 톨레랑스 지대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마케팅은 중간지대를 겨냥하는 이 톨레랑스 마케팅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등 반도체 기업을 만들었지만 회한과 포부를 접은 채 시민사회의 정직요구를 받아들여 퇴진한 건 이건희 회장의 톨레랑스일 것이며, 격동시대의 독한 시련을 토지의 넉넉함으로 받아낸 건 고 박경리 선생님의 톨레랑스일 것입니다.

불안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길에 톨레랑스가 있고 막연한 희망의 잣대가 무너졌다고 현 정부를 흔들어대기 보다는 `5대빵 감독'을 지켜보듯 현 정부를 보는 것도 성숙한 국민의 톨레랑스 아닐까요. 심판의 시간은 따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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