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13일(08:3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자본시장통합법시대의 개막이 다가오고 있다. 변화의 시기에 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법이지만 자통법의 시행에 대해서는 기대에 찬 시각이 더 큰 것 같다.
'선진대형IB'가 의미하는 것
일반적으로 가장 큰 기대는 소위 '선진대형 IB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엄밀한 시각의 정리는 아직 미진한 것 같다. 사실 IB라는 개념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일전에 어떤 기자가 IB관련한 시리즈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필자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말하던 가운데 IB를 어떻게 정의하고 대상을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파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IB라고 할 때 기업자금시장에서 출발한 단순한 자금의 중개업무에서 자기계산하의 투자행위가 들어간 딜링업무와 요즘 유행하는 소위 PI투자 등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들이 IB사업부를 두고 있고 그 업무도 이런 정도의 내용을 업무로 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로서의 대형 IB라는 표현과 회사 내 IB사업이라는 표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왜 그런고 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IB사업이 잘 이루어지려면, 지금과는 다른 질적인 선진화를 거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IB업무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지금의 우리나라 시장과 같은 가격의 차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골드만삭스가 경쟁사 보다 기업의 자금조달을 싸게 해줘서 경쟁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업금융의 '유지가능한' 경쟁력의 원천은 기업의 자금수요에 적합한 조달구조를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잘 쓰는 표현으로 금융'솔루션'을 팔아먹는 장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잘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다. 식당의 경쟁력이 종업원의 친절 보다는 주방에서 더 많이 결정되는 것 처럼 증권사도 손님을 맞는 IB사업부의 능력보다 어쩌면 상품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주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역할은 아직 우리증권사들이 선진IB에 비해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기업의 조달수단이 되는 주재료를 서로 섞거나 파생상품과 같은 부재료나 양념을 잘 섞어 또 다른 손님(투자자)의 입맛에 맞아 잘 팔려나갈 수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이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좀 더 멀리 보면 자기계정을 통해 적절히 사고파는 거래를 통해 특정 금융상품의 시장유지를 위한 기능도 수행해야 된다. 이것 역시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와 관련된 전문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러한 거래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면 시스템이나 회사의 정책, 적정한 수준의 리스크관리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PI투자와 같은 자기투자 역시 내부적인 딜 선별능력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업부서건 리스크관리 부서건 크레딧 애널리스트의 중요성은 IB화의 진전과 함께 더욱 커진다.
증권회사의 규모와 신용도가 회사차원에서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규모가 작거나 신용도가 낮은 증권사는 좋은 가격에 파생거래를 하기 어렵다. 바구니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필요 이상의 리스크를 져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합병을 통한 초대형 IB의 유도라는 화두에 대해 시장 내 많은 사람들이 기대 섞인, 그러나 혼란스런 시선을 보냈던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아직은 우리 증권사들은 보완하고 확충해야 할 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사실 최근 국내 몇 대형증권사들은 전통적인 브로커리지중심의 영업에서 벗어나 IB와 트레이딩을 강조하는 이런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학습비용 줄이기
또 다른 즐거움은 우리가 후발자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우리경제의 급속한 성장의 한 설명으로 쓰였던 이런 표현이 금융에서는 좀 생뚱맞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를 전후한 변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미국의 슬픔이 우리의 향후의 학습비용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사실 지난해 서브프라임문제가 본격화되기 전 수년간 미국 금융시장은 눈부신 성장을 가겨왔다. 시장의 첨단에서 그런 호황을 이끌었던 주된 분야는 신용파생을 포함한 구조화신용시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일부는 서브프라임의 확대와 직접적인 관련이 지어져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도 신용위험을 재가공하고 적절히 전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 혁신이 꾸준히 이루어졌고 그런 혁신은 시장의 성장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런 혁신은 너무 빠르게 이루어졌고 중첩적인 구조화에 따른 복잡한 신용위험의 전가구조는 결국 최첨단인 미국의 금융회사들 마저 자기가 투자한 자산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이렇게까지 확대된 데는 초기에 자기의 포지션이 노출되어있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는 상태가 가져온 신뢰의 위기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의 신용위험의 전가구조는 아직은 그 정도로 복잡하지는 않다. 이제 시작인 까닭이다. 신용파생상품의 거래가 허가되고 자통법이 시행되면 우리나라 자금조달시장에서의 IB솔루션이 제공하는 거래구조의 복잡성은 이전에 비해 한층 커지리라 예상된다. 특히 회사채시장의 많은 사람들은 신용파생과 관련해 합성(synthetic)상품의 소개와 시장확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의 작고 큰 혁신들이 시장내에 나타날 것이고 금융시장의 상품구조의 복잡성은 높아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혼란이 우리의 향후의 학습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러한 '똑똑함'은 충분한 예습과 학습능력의 향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기껏 1~2명의 크레딧애널리스트를 데리고 그런 선진적인 거래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맹신일 뿐이다. 기대와 신념을 소중한 가치지만 그것 만을 믿는 것은 돈키호테에 다름 아니다.
2007~ 우리투자증권 리스크&크레딧 센터장
2005~2007 우리자산운용ㆍ우리CS자산운용 채권운용 본부장
2000~2005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
1990~2000 한국신용평가 크레딧 애널리스트, 팀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과정 수료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