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해우(解牛)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 2008.06.09 11:03
또 소 이야기입니다. 백정이 왕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손놀림이나, 어깨로 받치는 것이나, 발로 딛는 것이나, 칼질하는 품이 음률과 장단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이를 본 왕이 감탄하며 어떻게 하면 소를 잡는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에 백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합니다.

"제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온통 소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을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의 이치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넣고 빈 결을 따라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고, 더구나 뼈에 닿은 적이 없습니다. 우수한 백정이라도 해마다 칼을 바꾸지만 저의 이 칼은 사용한 지 19년이 됐고,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으나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모두 잘 아는 '장자' 양생주(養生主) 편에 나오는 '포정해우'라는 유명한 예화입니다. 포정으로부터 술(術)이 아닌 도(道)로 소를 잡는 이야기를 들은 양나라 문혜군은 비로소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며 감탄합니다.
 
온 나라가 소 문제로 시끄러운 지금, '해우'(解牛)의 방법을 2000년 전의 장자와 포정에게서 찾을 수는 없을까요.
 
지난 5월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이래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정부가 한·미 두 나라 민간업체의 자율규제 형식으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들을 바꾸겠다고 해도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늘어나기만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전면 재협상과 고시 철회를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2002년의 월드컵 때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축제의 한마당을 펼칩니다. 김밥을 나눠 먹고 음료수도 나눠 마십니다.
 

정치성 구호 일변도의 정권 퇴진 운동보다 더 무서운 게 놀이와 풍자, 웃음이 어우러지는 축제형 집회라는 것을 우리는 월드컵 때 경험했습니다.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버리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정은 술이 아닌 도로 소를 잡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소 문제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술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쇠고기 문제는 전혀 다릅니다. 소에는 수천 년의 민족정서 같은 게 녹아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식탁에 오르는 주요 먹을거리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전면 재협상을 하려면 부작용이 클 것입니다. 실익도 없을 뿐더러 자동차나 반도체 수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한·미 FTA가 완전히 무산될 수도 있지요. 술의 논리로, 경제적 이해타산으로만 따지면 전면 재협상은 당연 말이 안되는 일이지요.
 
방송에서 촛불집회 폄하 발언을 한 연예인이 중도하차하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쇠고기 문제에 관한 한 비이성과 광기가 일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국민들의 마음입니다. 쇠고기 수입을 양보하는 대신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다 해도,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 5만달러로 가려면 개방은 필수고, 쇠고기보다 더한 것을 열어줘야 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싫다면 못하는 것입니다.
 
이젠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오랜 기간 성장과 개방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다독거린 다음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양생의 길은 안타깝더라도 국민에게 항복하고 백기투항하는 것입니다.

베스트 클릭

  1. 1 의정부 하수관서 발견된 '알몸 시신'…응급실서 실종된 남성이었다
  2. 2 "건드리면 고소"…잡동사니로 주차 자리맡은 얌체 입주민
  3. 3 [단독]음주운전 걸린 평검사, 2주 뒤 또 적발…총장 "금주령" 칼 뺐다
  4. 4 22kg 뺀 '팜유즈' 이장우, 다이어트 비법은…"뚱보균 없애는 데 집중"
  5. 5 "이대로면 수도권도 소멸"…저출산 계속되면 10년 뒤 벌어질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