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인플레이션, 베트남 강타"

하노이(베트남)=김성호 기자 | 2008.06.08 12:00

임금상승률, 인플레 못 쫓아가… 화폐기능 상실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기업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조차도 2개월 전부터 물가 급등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증시 급락이 연일 신문을 도배하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은 더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더욱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동화(베트남 화폐)의 가치는 어느새 상점에서도 받지 않을 만큼 하락해 베트남의 경제침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갖고 있고, 자신들의 저력을 믿고 있다.

↑ 하노이 공항 면세점에서 일부 매점이 동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문구를 내걸어 놓고 있다.
◇치솟는 물가 '속수무책'="월급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 힘들다. 월급이 작년보다 10%가량 오르긴 했지만 일상생활용품 가격이 너무 오르다보니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베트남에서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A씨의 하소연은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그대로 보여줬다.

최근 베트남에는 A씨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셀러리맨들이 많다. 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해 주고 있지만 급등하는 물가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은 나은 편이다. 쌀국수 집을 운영하는 B씨는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요즘엔 하루먹고 하루살기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예전에는 가계를 운영하면서 저축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저축은커녕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규모가 제법 큰 식당도 물가급등으로 일반인들의 소비가 줄어든 탓에 어려움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노이에서 11년간 해산물전문집을 운영해 온 C씨는 하루 평균 150명에 달했던 손님이 최근 들어 25%가량 줄었다고 말한다.

C씨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소득수준이 일반인들보다 조금 높다"며 "그러나 이들 역시 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소비가 위축됐고, 결국 식당을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C씨는 최근 음식값을 10%정도 올렸다. 과거에도 음식값을 인상한 적이 있지만 근래처럼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인상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한다.

◇부동산, 터지지 않은 폭탄=최근 베트남 증시 급락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증시 급락이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라는 일반적인 상식 탓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증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에 처한 것이 바로 부동산이다.

다국적 부동산 체인업체의 베트남 지사 본부장을 맡고 있는 D씨는 베트남 경제에 대한 보도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다소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D씨는 "호치민에 '사이공 펄'이라는 고급 아파트가 있는데, 한국의 강남 도곡동 아파트 정도로 보면된다"며 "이 아파트는 불과 3개월 전까지 1㎡당 매매가가 4000달러까지 올라갔는데 이달 들어 20%가량 급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이곳은 입지 조건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30~40%가량 하락한 상태"라며 "하락 속도가 주가만큼 빠른 편"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D씨는 "현재 베트남에선 부동산 거래가 거의 중단된 상태"라며 "시중에 돈이 없어 기존 물량의 거래가 안되는 것은 물론 신규 분양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물건이 하나 나오면 10곳 이상의 매수자 몰렸는데,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사실상 대출이 막히게 되자 거래가 실종 됐다는 것이다.


D씨는 부동산시장이 급랭할 경우 경제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작년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의 83%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데, 만일 부동산 경기가 식으면 베트남 경제 성장을 떠받쳐온 FDI가 감소할 것이고, 여기에 서민 보유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가장 큰 점을 감안할 때 큰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D씨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파장은 주가 폭락과 비교가 안 될 것"이라며 "다만 베트남 정부가 내년 1월1일부터 부동산 소유 제한으로 높은 임대료를 물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주거용 목적으로 50년동안 장기임대 및 매매를 허용토록 할 방침이며, 이밖에 다양한 정책을 준비 중인 점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 베트남의 아침,저녁은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오토바이로 부산하다. 사진은 증권거래소 앞 전경.
◇화폐가치 떨어질 데로 떨어져=얼마 전 베트남을 방문한 E씨는 동화의 가치하락을 몸으로 체험했다. 하노이 공항 면세점을 찾은 E씨는 물건 값을 치루기 위해 동화를 냈으나 직원은 달러를 내거나 신용카드로 결제할 것을 요구한 것. 결국 E씨는 신용카드를 통해 물건값을 계산해야 했다

E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동화의 가치는 떨어질 데까지 떨어진 모습이다. 자국에서조차 자국의 화폐대신 달러를 받을 정도로 이미 동화의 가치는 크게 추락한 상태다. 공항 면세점 직원인 F씨는 "이달 들어 면세점내 대부분 매장들이 동을 안 받고 있다"며 "정부 고시 환율은 1달러에 1만6200동이지만 이 가격으로 환전해선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토산품 가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들 토산품 가계는 비롯 동화를 받기는 하지만 공식환율에 따른 가격보다 20%정도 웃돈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매장은 '동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기도 한다.

◇ 국민들, 베트남 성장성은 굳게 믿어=비록 베트남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베트남 정부의 정책에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에어컨 회사를 운영하는 G씨는 "경제가 안좋은 점에 대해선 물론 걱정된다"며 "그러나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내놓고 있고, 정부 정책이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H씨도 "3년동안 주식투자를 해 왔는데, 그동안 15억동을 투자해 올 초 다 팔았다"며 "미래 불확실성 탓에 팔았지만 베트남 증시에 대해 여전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며 증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밖에 회사원 I씨는 "다른 종목은 다 팔고 EIB은행주 1200주를 들고 있다"며 "주식이라는 것이 손실을 볼 때도 이익을 볼 때는 있는데, 베트남 정부의 노력과 향후 성장성을 감안해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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