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5일, 체코 동북부 오스트라바 인근의 노소비체 지역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체코공장 기공식에서 정몽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유럽 최고품질의 차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만들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기공식은 2006년 5월 체코측과 공장건설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한 지 1년여가 지난 뒤에야 열렸다. 같은해 3월 불거진 현대차 비자금 사태로 인해 기공식이 수차례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차질을 빚었던 것은 체코공장 뿐이 아니었다.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 기공식 및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준공식 등도 잇따라 연기하거나 행사내용을 부랴부랴 바꾸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현대·기아차는 '정 회장이 해외 생산기지 건설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비자금 사건 재판부에 해외공장 건설 사실을 알리고 재판일정의 조정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정 회장은 틈만 나면 해외 생산 및 판매 현장을 찾는다. 현장에서 경영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얻고 곧바로 현장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스타일이다.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판매에 적극 나서야만 세계적인 브랜드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아차 중국 옌청 공장 준공식에 이어 현대차 인도공장 준공식(올 2월), 현대차 베이징 2공장 준공식(4월) 등 그동안 열린 해외 생산기지 건설행사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그러나 지난 5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현대차 러시아 공장 기공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누가 참석을 못하게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정 회장은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수행단에서도 스스로 빠졌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하루전날 열린 재판에서 내려진 결정의 중요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숙하는 차원에서 계획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을 대신해 기공식 대표로 참석한 서병기 부회장, 최재국 사장 등 현대차 경영진들 사이에서도 허전한 표정이 엿보였다. 기공식에 참석한 국내외 관계자들 역시 "정 회장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큰 것 같다"고 한마디씩 했다.
기공식 참석자들이 느꼈던 '정 회장의 큰 빈자리'는 정 회장의 향후 행보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 회장과 현대·기아차그룹 모두 자신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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