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형 CEO의 협상 스타일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 소장 | 2008.06.18 12:14

[머니위크 칼럼]

1987년 CNN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의 진행자가 된 래리 킹은 회사측과 협상을 하고 있었다. 에이전트를 내세운 이 협상에서는 계약 연장 여부가 관건이었다. 에이전트에게는 유리한 협상 카드가 하나 있었다. CNN의 경쟁 업체는 몇백만달러를 더 주더라도 래리 킹을 스카우트 할 의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 에이전트는 요구 금액을 크게 올려 불렀다.

그러나 CNN의 대표 테드 터너는 이 요구액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신 래리 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CNN에서 <래리 킹 라이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차분히 설명했다. 결국 래리 킹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는 토크쇼에서 터프한 인터뷰 진행자였을지는 몰라도 협상에서는 터프가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훗날 테드 터너는 래리 킹이 정과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미국 워튼스쿨(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의 교수이자 협상학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쉘이 이 사례를 분석한 적이 있다. 왜 에이전트는(혹은 래리 킹까지도) 테드 터너와의 협상에 실패했을까?

우선 에이전트가 자신의 고객인 래리 킹의 성향이나 경력, 목표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런 사실을 협상 상대편인 테드 터너가 알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몰랐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이 협상은 어른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식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 초반의 대실착으로 꼽히는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비슷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할 에이전트인 대통령은 민심을 너무 몰랐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부 관료들은 광우병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만 고려했다. 그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시장 개방이 강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반면 국민은 확률의 고저보다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점에 분노했다. 새 대통령이나 정부가 오만하며 국민을 무시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에이전트와 래리 킹처럼 대통령과 국민은 서로를 너무 모른 채 권한을 위임하고 행사했다.


그에 반해 미국은 새 대통령이 자신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알았다. 더욱이 그는 이전 대통령과 다른 행보라면 뭐든 할 참이었다. 이전 정부를 다루는 데 크게 애를 먹었던 미국으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골적인 구애를 먼저 펼치는 이에게 값비싼 선물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의 ABC나 마찬가지다.

이제 에이전트와 고객, 즉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재협상이 없는 한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쉘 교수의 틀은 유용하다. 그는 협상자의 유형을 4가지로 구분한다. 문제 회피 스타일, 협력적ㆍ타협적 스타일, 수용적ㆍ수동적 스타일, 공격적ㆍ일방적 스타일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협상이 가장 안 풀리는 경우는 공격적ㆍ일방적 스타일이 협력적ㆍ타협적 스타일과 만났을 때다. 후자는 협상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기를 바라지만 전자는 이를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술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쉘 교수는 이런 공격적ㆍ일방적 스타일이 자수성가형 CEO에게서 가장 흔하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과거 자신의 성공을 바탕으로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가 지금 이 분석 그대로다. 국민은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의 협상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에 분노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은 국민의 분노를 정치적 목적과 배후를 가진 움직임으로만 여기고 있다. 쉘 교수의 협상학 틀에 따르자면 미국과의 협상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의 간극 좁히기가 훨씬 어려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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